노인들의 의열투쟁을 이끈 독립운동 지도자 2017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 |
부서 | 공훈관리과 |
---|---|
연락처 | 044-202-5771 |
노인들의 의열투쟁을 이끈 독립운동 지도자 2017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김치보(金致寶, 1859. 9. 17~1941. 11. 18.) 선생을 2017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 선생은 평안남도 평양 출생으로 1919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노인동맹단을 조직하고 강우규를 국내에 결사대로 파견하여 새로 부임하는 조선총독 사이토 암살시도를 지원한 분이다. ○ 1908년 경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한 후 덕창국이라는 한약방을 운영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 1909년 국민회 블라디보스토크 지방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청년돈의회 회장을 맡아 한인 교육활동에 힘을 쏟았다. ○ 1910년 성명회의 병탄조약 원천무효 선언서에 서명하였고, 1911년 권업회에 참여하여 통신부장에 선임되었다. ○ 1919년 2월 대한국민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3·1운동 소식이 들려오자 연해주 일대에서 대규모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 1919년 3월 노인동맹단 단장으로 선출되었다. 노인동맹단은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일본총영사관에 독립요구서를 제출하였고, 9월 강우규를 국내에 결사대로 파견하여 남대문역 앞에서 새로 부임하는 조선총독 사이토에게 폭탄을 던져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 1922년 4월에 해삼위천도교교구장 고문자격으로 귀국하여 최시형의 아들 최동희를 만나 고려혁명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선생의 행적은 1924년 3월까지 확인되나 이후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 정부는 1996년 김치보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
파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