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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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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지역의 독립운동 명문가 출신 강영대, 강영상 형제 등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29명 포상
작성자 : 김성민 작성일 : 조회 : 2,980
부서 공훈심사과
연락처 02-2020-5233

미주지역의 독립운동 명문가 출신 강영대, 강영상 형제 등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29명 포상
◆ 건국훈장 17명, 건국포장 2명, 대통령표창 10명 ◆

▣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오는 17일 제74회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결성에 적극 참여해 간부로 활동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보낸 강영대?강영상 형제를 비롯하여 29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포상한다고 14일(목) 밝혔다.

  -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17명(애국장 5, 애족장 12), 건국포장 2명, 대통령표창 10명이다.

  - 훈.포장과 대통령표창은 제74회 순국선열의 날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식장에서 유족에게 수여된다.

▣ 국가보훈처는 일제의 각종 행형기록 및 정보문서, 신문보도 기사의 분석?검토, 적극적인 현지조사를 통해 29명의 독립유공자를 발굴 포상하게 되었다. 특히 이번 포상자 중 16명은 판결문 등 입증자료를 통해 공적내용을 발굴, 확인한 후 다시 읍?면?동사무소에서 제적등본, 가족관계등록부 등을 역추적하여 유족을 찾아 포상함으로써 후손들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었다.

▣ 이로써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분은 1949년 독립유공자 포상이 시작된 이래 건국훈장 9,848명, 건국포장 1,038명, 대통령표창 2,517명 등 총 13,403명에 이른다.

▣ 앞으로도 국가보훈처는 독립기념관과 국사편찬위원회, 국가기록원, 지방자치단체, 문화원 등과 사료 수집 협조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국외 소장 자료를 지속적으로 발굴함으로써 숨겨진 독립유공자를 찾는데 더욱 노력해나갈 계획이다.

▣ 금년도 제74회 순국선열의 날 포상자 중 주요 인물들의 독립운동 공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미주지역의 독립운동 명문가 출신 강영대,강영상 선생
   1909년 이후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결성에 참여해 중요 간부로 활동하며 여러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다액의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강영대,강영상 형제에게 각각 건국훈장 애족장과 대통령표창이 추서된다. 1910~1912년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부회장 및 대의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을 후원한 강명화(2012, 건국훈장 애족장) 선생이 부친이며, 강영대 선생은 장남, 강영상 선생은 4남이다.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장 등으로 활동하는 등 1910~1930년대 미주 한인사회의 대표적 독립운동가로 이름이 높은 강영소(2011, 건국훈장 독립장) 선생이 차남, 1904~1945년 역시 대한인국민회 시카고지방회 집행위원장으로 독립운동을 했던 강영문(2012, 건국훈장 애족장) 선생이 3남, 1925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회에서 활동하고 『국민보』의 영문 주필로 독립운동 선전활동에 종사한 강영각(1997, 건국포장) 선생이 5남이다. 이번에 강영대?강영상 선생에 대한 포상으로 부친과 5형제 모두가 독립유공자로 서훈되는 영예를 안았다.
 - 죽는 날까지 조국독립에 헌신한 미주 한인사회의 지도자, 임정구 목사
   1906년부터 1938년까지 미국에서 한인단체의 간부로 활동하며 수십 차례에 걸쳐 독립운동 자금을 후원한 임정구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1906년부터 1919년까지 공립협회 로스앤젤레스지방회 경찰, 대한인국민회 클레몬트지방회 및 리버사이드지방회 대의원, 샌프란시스코지방회 총무회장,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총회장 대리로 활동하였다. 또한 1920년부터 1938년까지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 대의원, 미주한인연합회 선전부장, 대한인국민회 부회장 및 중앙집행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미주 한인동포들에게 독립의식을 고취하고 수십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는 등 1939년 12월 28일 사망하기 직전까지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하였다. 1886년 평남 강서에서 태어난 선생은 모태신앙의 기독교인으로 1905년 하와이로 건너온 뒤 이듬해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대학을 마치고 신학을 공부, 22년간 미주 한인사회에서 목회자로 시무하면서 조국독립운동을 후원하는 데도 앞장선 진정한 애국자였다. 선생에 대한 포상은 뒤늦게나마『신한민보』등에서 공적이 밝혀지고 사망 사실이 확인되면서 이루어졌다.  
 - 충청도와 전라도에 걸친 눈부신 활동으로 이름을 떨친 백낙천 의병
   충청북도와 전라남도 일대에서 의병에 가담하여 동지를 규합하고 군수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백낙천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1907년부터 이듬해까지 충북과 전남 지역에서 이중봉(李重鳳),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가담하여 참모로 활동하고 동지를 규합하고 군수품을 조달하다 1909년 2월 충주에서 일경에 체포되어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선생의 활약상은『황성신문』(1909.2.26),『대한매일신보』(1909.2.26),『매천야록』(황현, 1909)에까지 소개되어 신출귀몰한 의병활동의 사례로 이름을 떨쳤는데, 특히 『대한매일신보』는 “백락천씨가 불행히 일 헌병에게 잡혔는데…”라고 하여 선생의 체포를 안타까워했다.
 - 조선독립만세를 절규하다 적의 주재소까지 공격한 이봉환 선생
   1919년 3월 경상북도 안동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고 경찰관주재소에서 일인 순사를 응징하다 체포된 이봉환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1919년 3월 21일 경북 안동군 임동면 중평동 소재 편항(鞭巷) 시장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한 뒤 선두에서 편항 경찰관주재소로 달려가 주재소를 파괴하고 순사를 응징하다 체포되어 징역 2년의 중형을 받았다. 선생의 활약은 3.1운동이 평화적인 만세시위운동에서 출발하여 점차 경찰관주재소 등 조선인을 직접 통치?탄압하는 적 기관을 공격하고 일인 순사를 응징하는 등 격렬한 양상으로 발전하였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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