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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 재가 복지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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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충주) 깍두기 공책
작성자 : 양만하 작성일 : 조회 : 2,762
 

깍두기 공책


괴산보훈도우미 정숙현


지난 겨울 할머니 한분께서 1년을 방문하면서도 몰랐던 비밀을 조심스레 털어 놓으셨다.

“내가 꼭 배우고 싶은 게 있는데... 좀 가르쳐 줄 수 있을까? 그게 말이야 내가 글을 몰라서...”

얼마나 어렵게 그 말씀을 꺼내셨을지 알기에 순간 목구멍으로 뜨거운 게 올라왔다. 할머니를 위해 필통에 연필과 지우개, 연필깍는 칼을 넣고 깍두기 공책에 ㄱ,ㄴ,ㄷ,ㄹ 자음과 ㅏ,ㅑ,ㅓ,ㅕ 모음을 한 줄씩 적어 방문했다. 깍두기 공책이란 이름을 처음 알았다며 마냥 신기해 하시고 뽀족하게 깍은 연필을 매만지며 처음으로 써보는 글자들을 따라 쓰신다. 깍두기 공책의 표지에 네임펜으로 크게 쓴 이름 석 자를 보고 눈물을 글썽이시며 내 공책과 연필을 갖게 될 줄 몰랐다며 좋아하신다. 큰소리로 읽고 또 읽고... 돌아서면 잊어 버려 배워도 소용없으면 어쩌나 가르치기 힘들면 어쩌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국 사람이니 한글을 배우는 건 어려운 게 아니라며 걱정하지 마시라고 위로하고 한주일 동안 공부하실 숙제를 적어드렸다. 다음 주에 방문했을 때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드린 자모음은 물론 다 채워 쓰셨고 몇 번을 되풀이 쓰셨는지 배우고 싶은 열의가 얼마나 대단한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매일 저녁마다 쓰셨다니...

‘가나다라..., 거너더러... 고노도로... 구누두루...’그렇게 받침없는 글자들을 익혀가고 ‘각낙닥락... 간난단란...갈랄달랄...강낭당랑...’ 받침있는 글자들을 익혔다. 한주일 동안 공책에 쓰는 숙제는 물론 연습장까지 만들어 쓰기 연습을 매일 반복하셨다. 할아버지께서 이제 배워 뭐하려느냐고 타박하면서도 다 할때까지 옆에서 지켜보고 계신다며 은근히 자랑하신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경험을 바탕으로 할머니와 공부하는 시간은 너무도 즐거웠다.

다리에는 안마장화를 신고 어깨에는 저주파 치료기를 붙이고 둥근 밥상을 펴고 공부하자면 우습기도 하지만 정말 열심히 하신다. 잘 나오는 연필에 공연히 침을 묻혀가며 꾹꾹 눌러 글씨를 쓰시는 모습은 옛날 흑백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동요도 부르고 동시도 읽어보고 짧은 동화도 같이 읽어 볼 수 있게 되고 드디어 받아쓰기! 할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받아쓰기를 하셨다. 소리나는 데로 쓰는 게 많아 100점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매번 받아쓰기를 하는 걸 너무도 즐거워하셨다. 그렇게 깍두기 공책 3권을 쓰고 글쓰기 책들에서 골라 복사해가는 종이들과 연습장이 늘어가면서 할머니는 TV속의 글씨들을 따라 읽고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게 되셨다. 보훈회관에서 문화교실이 열리던 날 할머니는 남보다 먼저 노래가사가 적힌 인쇄물을 받아서 소리내어 읽어 보셨다. 그리고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부르셨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어. 정말 고마워.”

일정때는 한글을 쓸수 없었고 전쟁중에는 학교가 없었고 전쟁이 끝나고 너무도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여자들은 학교에 보낼 필요가 없다고 아들만 학교에 보냈다고 했다. 너무도 가난해서 그랬을 거라며 지나간 세월이 정말 답답하고 힘들었다고 하셨다. 그렇게 살림살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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