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독립운동가 이희승(李熙昇)선생 | |
부서 | 공훈심사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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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처 | 02-2020-5235 |
국가보훈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조선어학회 회원으로 ‘한글맞춤법통일안’의 제정에 깊이 관여하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룬 이희승 선생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1897년 경기도 시흥군에서 태어났다. 1910년 관립 한성 외국어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자 학교를 중퇴하였다.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한 일제는 이듬해 8월 ‘조선교육령’을 공포하여 일본어 교과서를 사용하고 평상시에도 일본어의 사용을 강제하는 등 이른바 ‘민족말살정책’을 추진해나갔다. 선생은 1934년 5월 우리의 역사?언어?문학을 연구하고자 이윤재, 손진태, 이병도 선생 등과 함께 학술단체 진단학회를 결성하고, 1938년 조선어학회에서 간행한 잡지《한글》에 2년 동안 ‘한글맞춤법통일안 강의’를 연재하는 등 한글 맞춤법을 연구하고 일반 대중들에 알리는데 앞장섰다. 1942년 10월, 선생은 일제가 한국민족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어 말살정책을 대폭 강화하고 한글 연구자와 한글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조선어학회사건’으로 검거되었다. 선생은 우리의 민족 문화와 정신이 짓밟히던 암울한 시대에 끊임없이 우리말을 연구하였고, 해방 후 그러한 각고의 결실로 ??국어대사전??(민중서관, 1961)을 편찬하였다. 선생의 이러한 노력으로 우리는 일제 35년의 지배를 받고도 우리의 언어를 지켜 낼 수 있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로를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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