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독립운동가 김원국?김원범 의병장 | |
부서 | 공훈심사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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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처 | 02-2020-5232 |
6월의 독립운동가 김원국?김원범 의병장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김원국?김원범 형제 의병장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31일(금) 밝혔다. 김원국 선생은 아우 김원범 선생과 함께 광주 무등산에서 거의하여 전남 중서부 지역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다 영광 불갑산 전투에서 체포되어 교수형으로 순국하였고, 김원범 선생은 전해산과 대동창의단을 조직하여 중군장으로 활동하다 일본군과 교전 중 체포되어 자결 순국하였다. 아우 김원범은 1908년 7월 전해산 의병장과 함께 대동창의단을 조직하여 중군장으로서 영광 불갑산, 장성 동화, 담양 한재, 함평 원야 등 여러 지역에서 활약하였으며, 1908년 9월 김원국은 의병장 조경환 의진에서 도포장으로 활동하던 동생 김원범을 따라 선봉장이 되어 부하 100여명을 거느리고 전남 나주, 함평, 광주 어등산 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김원국은 아우의 체포 이후 의병을 수습하여 의병대장이 되어 나주향교 유림들에게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킨 뜻을 알렸고, 일본인이 장악한 광주 세무서에 대해서는 『호남의소』의 이름으로 세금을 거두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일본인에게 아부하는 친일파, 일진회원, 밀정 등을 처단한다고 경고하였다. 이후 독립적인 의병부대를 이끌어 함평군 적량면 등을 거점으로 광주, 나주, 동복, 창평 등 전라남도 지역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는 등 적극적인 대일항전을 전개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으나, 불갑산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치료 중 적의 기습에 체포되고 말았다. 재판과정에서 선생은 아우 김원범이 일본 헌병에 살해된 것에 대한 보복과 국가를 위하여 의병대장이 되었음을 당당히 밝히고 1910년 5월 대구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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