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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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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독립운동가 강영소
작성자 : 우진수 작성일 : 조회 : 1,926
부서 공훈심사과
연락처 02-2020-5232

8월의 독립운동가 강영소
(1886.2.18 ~ 1934.8.24)
◈독립운동 명문가문 ! 미주 한인사회의 선구자◈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강영소 선생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31일(수) 밝혔다.

 선생은 미국 하와이에서 에와친목회, 합성협회, 국민회 등을 조직하고, 흥사단 간부 및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장을 맡아 동포사회를 이끈 지도자이다. 선생의 부친과 5형제가 모두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일가족 4명이 건국훈장에 추서되는 등 독립운동 명문가이다. 

 선생은 평안남도 증산에서 1886년 2월 18일 태어났다. 1903년 증산군 공립소학교를 마치고 1905년 4월 부친 강명화와 함께 미국 하와이로 이민한 선생은 에와농장에서 설립된 친목회와 호놀룰루에서 설립된 공진회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1907년 헤이그특사 사건으로 고종황제가 일제에 의해 강제퇴위 당하고 정미조약이 체결되는 등 국권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이에 국권회복의 후원과 교민사회의 발전을 목적으로 하와이 한인단체들이 합동하여 ‘한인합성협회’를 결성할 때 선생은 총무와 서기 등을 맡아 활동하였으며, 1909년 2월 한인합성협회와 미주 본토의 공립협회가 합동하여 국민회가 결성될 때 양 단체의 합동을 주도하였다. 이어 1910년 2월 미주의 대동보국회와 합동하여 대한인국민회로 출범하자 선생은 하와이지방총회의 총무를 맡아 활동하였다.

 1910년 10월 미주 본토로 이주한 선생은 신한민보사의 총무원으로 일하면서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 지방회의 재무와 중앙총회의 서기, 샌프란시스코 지방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하며 한인사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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