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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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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7■. 한용운.
작성자 : 송철효 작성일 : 조회 : 838
13.67■. 한용운. ●. 개 요. 1879. 8. 29 충남 홍성~ 1944. 6. 29 서울시인·승려·독립운동가 한용운 한국 근대시사의 불후의 업적인 님의 침묵을 펴냈고 한국 근대 불교계에서 革新的인 사상과 활동을 펼쳤으며 3·1독립선언에 민족대표로 참가하는 등 日帝强占기의 革命的인 獨立運動에도 앞장섰다. 본관은 청주(淸州). 속명은 유천(裕天). 자는 정옥(貞玉). 용운은 법명이며 득도할 때의 계명은 봉완(奉玩) 법호는 만해(萬海 : 또는 卍海). ●. 내 용. ▲. 그의 비타협적인 반일 독립운동 역시 불교혁신사상이 큰 영향을 주었다. 그의 대표적인 민족운동으로는 1919년 3·1운동의 참여를 들 수 있다. 그는 백용성(白龍城)과 함께 불교계를 대표하여 3·1독립선언의 민족대표로 참여한 다음 투옥되었는데, 옥중에서 변호사는 물론 사식과 보석을 거부할 것을 결의하고 일본 검사의 신문에 대한 답변으로 조선독립이유서를 집필하는 등 비타협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옥중에서 작성한 조선독립이유서는 상하이[上海]에서 발간되는 독립신문 1919년 11월 4일자 부록에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으며, 그는 이 글을 통해 제국주의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이해와 민족의 독립 근거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제시했다. 그는 다른 모든 사상에 앞서 인간의 자유와 평화가 우선함을,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해서 민족자존이 요구됨을 강조함으로써 그의 민족의식이 편협한 국가주의가 아니라 민족간이나 국가간의 자유와 평등에 입각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또한 자주독립의 조건이 독립할 만한 자존의 기운과 정신적 준비에 있음을 천명하여 물질문명이 부족하다는 점을 조선 식민지 지배의 근거로 삼았던 일제의 허구적 논리를 정확히 비판했다. 이는 준비론이나 실력양성론, 민족개조론 등 결국 일본의 식민정책에 부합한 개량론과는 질을 달리하는 비타협적인 독립사상으로 평가된다. 좌·우파 간의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에 적극 참여한 것도 그의 대표적인 민족독립운동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이전부터 우파의 민족운동과 좌파의 사회운동이 분열되어서는 안 됨을 역설한 바 있으므로 신간회에 관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후에 신간회 해소론이 대두했을 때는 그것이 올바르지 않음을 주장하고 신간회의 존속을 위해 노력했다. 그런가 하면 1929년 광주항일학생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그것을 민족적·민중적 운동으로 확산시키고자 민중대회를 계획했으나 일본경찰에 의해 무산되었다. 또한 그는 여성해방운동과 농민·노동 운동 등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며, 불교의 자주화운동에 앞장선 것도 민족독립운동의 하나로 보인다. ▲. 그가 이룩한 문학적 업적도 불교개혁사상이나 민족독립사상, 그리고 그 실천과 무관하지 않다. 그의 문학활동은 시에서 출발하여 시조와 한시 및 〈죽음〉·〈흑풍〉·〈후회〉·〈박명〉 등의 장편소설로까지 확산되었으나, 가장 의미 있는 성과를 낳은 것은 역시 〈님의 침묵〉으로 대표되는 시 장르이다. 1925년 백담사에서 탈고하여 이듬해 안동서관에서 발행한 〈님의 침묵〉은 당시 한국문단의 영향을 받지 않고 생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문학작품보다도 더 절실하게 민족의 현실과 이상,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요구되는 주체적 자세에 대해 노래했으며, 더욱이 그것을 풍부한 시적 이미지로 아름답게 형상화해 수준 높은 민족문학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이 시집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님'은 연인·조국·부처 등 다의적인 의미를 지니며 그에 따라 '님의 침묵'이라는 표현은 당시의 민족적 상황을 가장 압축적으로 상징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당시 상황을 시적 주체인 '나'가 님과 이별하여 님이 부재하고 침묵하는 시대로 규정하면서도, 님이 부재한 상황을 통해 '나'가 진정으로 님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는 변증법적인 진리를 드러내고 새로이 나가 님과 합일될 수 있다는 낙관적 인식에 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님과 새로이 만나기 위해서는 님에 대한 철저한 복종이 요구되는데 그 복종을 통해서 비로소 나는 자유로워진다는 '복종과 자유의 변증법을 노래한 것도 역사의 필연성의 인식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는 변증법적 진리와 통한다. 이러한 시적 인식을 통해 그는 식민지하에 있는 조국의 운명과 독립의 필연성 그리고 그것을 위한 실천 속에서 진정한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진리를 탁월하게 형상화할 수 있었다. ●. 결 론.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그의 시는 은유와 역설의 자유로운 구사롤 보여주며, 정형적인 틀을 완전히 벗어난 산문적 개방 속에서도 내재율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근대 자유시의 완성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부분 1930년대에 창작된 그의 소설은 신소설적인 계몽성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여 작품성이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는데 이는 그가 근대소설의 특수성을 충분히 자각하지 못한 가운데 소설을 자신의 사상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생각한 데서 연유한다. 즉 일제 말기로 접어들면서 더이상 직접적으로 항일독립사상을 펼칠 수 없게 되자 소설을 창작하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검열을 피하기 위해 청나라를 무대로 한 〈흑풍〉에서도 일제에 대한 투쟁정신을 은근히 보여주고 여성해방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삽입하여 반봉건 정신의 고취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1973년 신구문화사에서 〈한용운전집〉 전6권이 간행되었다. ●. 揭 載. 1. 國家報勳處 2. 國務總理室 3. 牧民 Forum 代表 4. 國防部 5. 保健福祉 家族部 6. 警察廳 7. 國政院 8. 全州市廳 9.傷痍軍警會 10. 武功 受勳者會 11. 6.25參戰 戰 友會 12. 獨立紀念館 13. 文化財廳 14. 全羅北道 道廳 15. 報勳敎育 硏究院 16. 戰歿軍警 遺族會 17. 戰爭 紀念館 18. 仁川大學 敎授 19. 益山市 嘉藍協會 理事 20. 全南大同財團 局長 21. 文化遺産 踏査會 Cafe' 22. 南原 崔明姬 文學會 理事 23. 大田顯忠院, 任實護國院 24. 全州市 圓佛敎 會長 25. 大韓民國 國家有功者會 26. 全羅北道 道廳 Monitor Cafe' 27. 越南 參戰 戰友會 28. 傷痍 軍警會 Cafe' 29. 南原 文化院 局長 30. 大韓民國 國家有功者 31. 國家有功者 廣場 32. 環境部 33. 其他 同僚입니다. 感謝 합니다! ●.2013년 03월 20일. 國家報勳處 알림이 및 諮問委員 龍湖 宋 哲 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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