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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9일은 경술국치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국치일 우리는 기억해야,
작성자 : 정병기 작성일 : 조회 : 1,260
8월29일은 경술국치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국치일 우리는 기억해야, 한.일 강제병합을 당한 치욕의 역사 잊지 말아야, 나라에 힘이 없어 일본침략을 막지 못해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슬픈 날, 금년이 8월29일은 경술국치 103년이 되는 해, 정부와 국민모두가 책임의식 가져야 하며, 나라에 국론이 분열되고 힘이 없어 일제의 침략과 무력적인 굴복에 역사 36년 식민지역사 되돌아보는 계기돼야,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과 역사왜곡 독도망언으로 보아 흑심은 살아있다는 사실 알아야한다. 일본은 항상 경계해야 할 민족이고 가까이하기엔 부담스러운 이웃국가이다. 나라를 되찾겠다고 홀연 단신으로 일제와 투쟁하다 끝내 광복과 독립을 맛보지 못한 채 낯선 타향이나 타국 아니면 옥중에서 일제의 총칼 앞에 맞서다 죽음으로 최후를 맞았지만, 지금은 살아남은 자의 잔칫상이 되고 그들은 잊히고 묻히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과제다. 지금도 나라위해 목숨 받친 그 후손들은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한 채 이지어지고 잃어버림 애국으로 묻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가슴 아프고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광복 제68주년을 맞아 나라위한 고귀하고 숭고한 희생이 버림받거나 잃어버린 애국, 잊혀진 애국이 되지 않게 정부당국은 관심과 책임의식을 갖고 철저히 관리해야 할 것이다. 광복 68주년... 무슨 때나 날만 돌아오면 나리 법석을 떨고 일일행사나 구호에 요란스럽지만, 며칠만 지나가면 잊혀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 투쟁하다 숨진 애국선열이나 미발굴독립유공자의 혼령은 나라 걱정으로 아직도 구천을 맴돌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대로 절차도 없이 들녘에 묻혀버리거나 아예 시신도 수습하지 못한 채 버려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말이나 구호가 아닌 진정한 실천의식을 가지고 진정성 있게 해야 할 것이다. 8월 29일 나라의 국권을 일제의 무자비한 총칼과 무력 앞에 빼앗긴 103년 전의 치욕을 생각하며 친일파들의 매국행위에 다시한번 분노하고 통탄한다. 나라 없는 설움과 고통은 당해본 국민만이 안다고 본다. 일제 36년의 치욕 같은 날에도 한 가닥 희망의 빛을 놓지 않고 독립과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선열의 영전과 위패 그리고 혼령에 다시한번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이상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게 국력을 신장시키고 튼튼하게 해 유비무환의 정신과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국민 누구든지 나라를 위해 희생한다면 정부가 끝까지 책임을 지는 풍토와 국민정서가 정착되게 해야 하며 이는 나라사랑과 민족정신의 첩경이 되고 자긍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본다. 글쓴이/정병기<미발굴독립유공자 후손, 칼럼니스트> 국치일(國恥日) 나라를 되찾은 광복절은 누구나 알지만 나라를 빼앗긴 날이 언제인지 기억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오늘(29일)은 치욕의 국치일(國恥日)이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에게 나라를 강탈당했던 그날을 우리는 ‘나라가 부끄러운 날’로 기억하고자 했다. 정든 고향을 등지고 러시아를 유랑하던 고려인들은 대욕일(大辱日)로 기념했다. 그런데, 지금 8월 29일을 국치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반백의 노인들은 달력에 표시돼 있던 ‘국치일’이라는 빨간 글씨를 기억할지 모르지만, 대부분 사람들에게 8월 29일은 낯설기만 한 날이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들은 국치일을 다시 기념일로 제정하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1910년 8월 29일 서울의 아침은 겉으로는 평온한 듯 보였다. ‘한국 병합에 관한 조약’은 1주일 전인 8월 22일 비밀리에 체결돼 망국은 기정사실이었다. 다만 이 날은 대내외에 그 비보를 공포하는 날이었다. 예비검속으로 눈과 귀를 단단히 막아놓은 상태였지만, 거리에는 완전무장한 경찰과 헌병이 쫙 깔렸고 기마대는 쉴 새 없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마침내 남산 밑에 자리한 통감부에 군복차림의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이완용 등 대한제국 대신들을 거느리고 나타나 행복증진과 동양평화를 약속하며 조약을 정식 발표했다. ‘제1조 한국의 황제 폐하는 한국 전부에 관한 모든 통치권을 완전 또는 영구히 일본 황제폐하에게 넘겨 준다’로 시작되는 총 8개항의 조약은 순종황제 서명 없이 공포됐고,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나라가 망했다. 백성들은 졸지에 망국민으로 전락했다. 왕조가 사라졌건만, 자결로 항의하는 황족은 없었다. 그와 달리 존경받던 선비 황현은 벼슬을 하지 않아 나라의 녹을 먹은 적이 없었음에도 500년 동안 선비를 길러준 나라에서 그냥 망국을 구경할 수만 없다면서 약을 먹고 자결했다. 그렇게 8월 29일은 망국민에게는 부끄럽지만 반드시 상기해야 하는 국치일이 되었다. 그들의 표현대로 ‘우리의 뼈 속에 깊이 새긴 가장 비참하고 가장 절통한, 민족이 오래도록 되새겨야 할‘ 이 날이 오면 어김없이 기념식을 거행하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만주 동포들은 ‘국치추념가’를 부르며 이날을 곱씹었다고 한다. 201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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