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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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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 경성형무소 식민지역사관 건립해야
작성자 : 정병기 작성일 : 조회 : 806
마포 경성형무소 식민지역사관 건립해야 제69주년 광복절을 맞아 독립을 위해 그들은 목숨을 잃어가면서 만세를 부르고 모진 고문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았다. 역사의 현장 악명 높던 경성형무소 자취조차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지고 있지만 그분들은 민족위해 투쟁하며 차가운 감방에서 주거나 형장에 이슬로 사라지면서도 노래를 부르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경성형무소는 진정한 독립성지 민족의 성지라고 본다. 일제가 강제병합으로 식민지를 시작하여 민족운동인 1919년3월1일 독립만세운동이 일어 난지 92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구국의 일념으로 맨손으로 나라의 독립을 찾겠다고 세계만방에 알린 3.1 만세운동은 우리민족의 정신과 의지의 표본이며 맨손으로 나라의 독립을 찾겠다는 군은 신념과 정신 그자체로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라를 잃고 방황하고 유랑하면서도 후손들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겠다는 일념으로 일제와 싸우고 투쟁하며 목숨을 바치고 붙잡혀 현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굴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를 신의 지키고 최선을 다한 선열과 애국투사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잔심감과 민족애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일제 36년 식민지생활을 하며 끊임없는 투쟁과 나라를 되찾기 위한 노력을 국내ㆍ외에서 멈추지 않았으며 체포되어 모진고문과 탄압, 그리고 굶주림에도 한 치의 흔들림이 없이 강한 정신과 자세를 가지고 옥고를 치루거나 사형을 당해 옥사하며 끝까지 지조를 지켰던 것이다. 역사의 현장에 바로 경성형무소 역사관 건립은 그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본다. 일제의 잔혹하고 반인륜적인 식민지만행을 저지른 경성형무소 식민지 역사관으로 남겨야 하며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우리의 과거의 역사를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우리가 과거를 제대로 알아야 현재를 알 수 있고 미래를 내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소재 일제강점기 악명 높았던 경성형무소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현재는 서울서부 지방법원ㆍ검찰청이 있지만 일제식민지시절에는 민족의 독립과 광복을 위해 운동하시는 모든 독립운동가 애국지사들 중 일제에 교화되지 않거나 일편단심인 중죄인들을 선별 분류하여 이곳 경성형무소에 수감 모진 고문과 탄압 그리고 굶주림에 죽거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민족의 성지가 바로 이곳임을 바로 알아야 한다. 이런 중요한 경성형무소를 자취도 없게 철거 공공기관을 건축하였다는 것은 역사의식의 부재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곳에 경성형무소 식민지역사관을 건립해 민족의 혼을 달래고 애국심과 정신을 후세에 전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이런 역사적 현장을 보존하고 역사를 후세들에게 가르치고 산 체험의장이 되어 다시는 외세에 짓밟히거나 수모를 당하는 일이 없게 과거를 교훈 삼는 역사의 장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금년이 한일강제 병합 105년이 지난 지금도 치욕스러운 과거가 있었다는 치욕스러운 과거역사 3.1운동 제95주년 광복 69주년이다. 나라의 독립과 광복을 위한 고귀하고 숭고한 정신과 희생이 묻혀 지거나 잊어지지 않아야 하며 버림받는 애국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받치고도 잊혀지거나 역사 속에 묻혀가고 있는 미발굴독립유공자가 없게 정부는 자료발굴과 명에를 찾아 주는데 앞장서 국가가 해야 할일을 마땅히 해야 국가보훈과 나라사랑에 대한 국가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재인식하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국민은 반드시 국가가 반드시 책임지는 풍토가 정착되어지기를 아울러 바란다. 당부 - 민족의 치욕스럽고 수치스러운 역사라 할지라도 제대로 복원 유지 보수하여 후손들에게 보여주고 물려줘야 진실한 역사를 통하여 나라사랑정신을 본받게 되고 애국정신의 근본이 될 것이다. 없애고 숨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역사는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포구청은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고 경성형무소 역사관 건립을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애국선열이 희생으로 마련해준 역사의 현장을 제대로 활용하여 독립정신을 고취시키는 역사의 현장이 되기를 바란다. 글쓴이/정병기<미발굴독립유공자> <참고자료> 마포형무소(麻浦刑務所) 독립운동가들. 이 사진은 광복 직후 남아있는 유일한 사진이다.[1] 마포형무소(麻浦刑務所)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 제국이 서울에 세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까지 사용되었던 형무소이다. 개요[편집]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전인 1908년에 서대문형무소의 전신인 경성감옥이 서울 서대문구에 지어졌다. 경성감옥의 수용 공간이 부족해지자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새 감옥이 신설되어 경성감옥으로 불리게 되었고, 서대문의 경성감옥은 서대문감옥으로 개칭했다. 마포의 경성감옥은 1923년부터 경성형무소로 이름을 바꾸었다. 일제 강점기 동안 대전형무소와 함께 무기수나 장기 수형자를 수용하였다.[2] 김일성의 숙부인 김형권이 옥사한 곳으로도 알려졌다. 일제 패망 후 1946년에 마포형무소로, 1961년에는 마포교도소로 각각 개칭했다. 1963년 경기도 안양시에 신설된 안양교도소로 이전하면서 폐지되었다. 마포형무소 건물은 이전 후 사라졌고, 그 터에는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이 들어서 있다. 1995년에 마포구 공덕동 105번지 마포형무소 자리에 "1912년 日帝가 경성형무소를 설치하여 항일(抗日) 독립 운동가(獨立運動家)들이 옥고(獄苦)를 치렀던 유적지"라고 적힌 표석이 설치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 8월 15일 서대문 형무소로 알려졌으나 이는 잘못 알려진 것이다. 한편, 가운데 검은색 바지 입은 인물 뒤에 이마만 보이는 인물이 당시 22살의 나이로 마포형무소에서 수감한 이갑상 2.이동 ↑ 이수강. “'형무소 옥사' 김일성 삼촌 김형권은 누구? - 1930년 함경도 풍산서 일경 사살…김일성은 "마포형무소 옥사"로 회고”, 《미디어오늘》, 2005년 8월 16일 작성. 2008년 9월 3일 확인. http://www.youtube.com/watch?v=g6gEv0Ug4gk 마포 '경성형무소' 식민지역사관 건립해야 www.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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