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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청소식

지(방)청소개

국가보훈부(국문) - 우리청소식(서울북부보훈지청) 상세보기 - 제목, 부서, 내용, 파일, URL 정보 제공
(e-좋은북부) 독립유공자 훈장 전수
부서 서울북부보훈지청
서울북부보훈지청(지청장 신현재)은 2007.8.23.(목) 지청장실에서 일제하 독립운동에
헌신한 공훈으로 1995년 영예로운 건국훈장을 추서 받으신 “故,변석붕”지사님의 훈장증
및 훈장을 지사님의 증손“변희수”님에게 전수하였다.
 변석붕 지사님은 경기도 파주(坡州) 사람으로,1915년 신한혁명당(新韓革命黨)의
성낙형(成樂馨)·김주원(金胄元) 등과 연결되어 광무황제(光武皇帝)의 해외 망명을
추진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박봉래(朴鳳來)·심인택(沈仁澤) 등을 동지로 규합하는 한편 경각서
(警覺書)를 작성·배포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신한혁명당은 1915년 이상설(李相卨)과 박은식(朴殷植) 등이 상해에서 결성한
독립운동단체로서 활동의 근거지를 북경(北京)으로 옮긴 뒤 광무황제를 당수
(黨首)로 추대하고 비밀리에 망명 계획을 세워 갔다. 이들의 계획은 광무황제를
북경으로 망명시킨 뒤 중국·독일과 연맹을 맺어 일본과 전쟁을 치러 독립을 쟁취한다는
것이었다. 제1차 대전이 일어나자 일제는 독일의 조차지였던 중국의 청도(靑島)를 점령
하면서 독일과 대립 관계에 있었으므로 독일이 유럽지역에서 승세를 굳히면 반드시
일본과 일전을 겨룰 것으로 판단하고 이 때 독일과 연합작전을 전개하여 독립을
쟁취하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신한혁명당에서는 외교부장 성낙형 등을 국내에
보내어 광무황제와의 연결을 도모하였는데, 이 때 광무황제와의 접촉은 변석붕이
맡았던 것이다. 대원군(大院君)의 신망을 받아 일찍이 정3품을 제수받았던 변석붕은
1897년에 15년의 유형(流刑)을 받았다가 1907년에 사면된 일이 있었다. 이후 그는
광무황제의 측근과 연결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이 일이 발각됨으로써 피체된 그는 1915년 10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서울북부보훈지청장은 전수식 간담회에서 나라가 어려울 때 자기 일신을 버리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일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시라며 독립유공자의 숭고한 애국정신에 존경의 뜻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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