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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동부보훈지청

지(방)청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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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만주사변
부서 보훈과

만주사변은 1931년 9월 18일 류탸오거우사건으로 비롯된 일본 관동군의 만주에 대한 침략전쟁을 말한다.  만주에는 러 ·일전쟁의 결과로 일본이 획득한 특수권익이 있었으나, 중국의 국권회복운동이 거세게 일고, 소련이 1928년부터 추진한 제1차 5개년계획의 진척 등이 관동군을 자극하여, 참모 이타가키 세이시로 대좌 등이 중심이 되어 전만주를 점거할 계획을 모의하였다. 이들은 그 구실을 만들기 위해 봉천 외곽의 류탸오거우에서 스스로 만철 선로를 폭파하고 이를 일으킨 집단으로 당시 펑톈군벌 장쉐량 정규군의 소행이라고 하여 펑톈군 공격 명령을 내려 장쉐량 군이 주둔하고 있던 북대영을 포격했다. 그라하여 일본은 만철 연선(沿線)에서 북만주로 일거에 군사행동을 개시하였다.
  일본군은 1932년 초까지 거의 만주 전역을 점령하고, 같은 해 3월 1일에는 일본의 괴뢰국가인 만주국의 성립을 선포하여 만주를 일본 침략전쟁의 병참기지로 만들었다. 국제연맹은 중국측의 제소에 따라 리턴조사단(조사원 구성: 단장 영국의 리턴경(卿) 이하 이탈리아의 알드로반디 백작, 프랑스의 H.클로델 중장, 미국의 F.R.맥코이 소장, 독일의 H.슈네 박사)을 파견하고 그 조사보고서를 채택, 일본군의 철수를 권고하였으나, 러허성을 점령한 일본은 이를 거부하고 1933년 3월 국제연맹을 탈퇴하였다. 이를 계기로 일본 정국은 정당내각에 종지부를 찍고 파시즘 체제로 전환하였으며, 이러한 침략행위는 1937년의 중일전쟁과 1941년의 태평양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이로인해 우리나라의 만주에서의 독립운동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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