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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보훈도우미 수기-그리움은 화석이 되어
부서 보훈과

그리움은 화석이 되어

보훈도우미 김순희

벌써 첫눈이 내리고 올해도 마지막 한 장의 달력만 남겨놓고 또 한해를 기다립니다. 국가보훈처의 보훈도우미로 활동하면서 영주지역 국가유공자(유족) 어르신들과 함께한 시간도 어언 두해 너무도 잊지 못 할 시간들이 정말 소중했던 시간들이 참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어르신들이 웃을 땐 함께 웃었고 눈물 흘릴 땐 함께 손을 잡고 눈물 흘렸던 날들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칩니다.
어느 날이었던가 미망인회 회장님께서 우리 미망인들이 강원도 춘천소양강댐 구경 가는데 함께 가자며 전화를 주셨습니다. 제가 돌보고 있는 어르신들도 그중에 세분이나 계시기에 고맙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여행 당일을 가슴 설레며 어르신들이 멀미 나 하지 않을까 혹여 힘이 들어 도중에 환자는 생기지 않을까 하여 비상 약품과 멀미약 등등을 꼼꼼히 챙기고 준비를 하였습니다.
아침 일찍 준비한 것을 점검하고 또 점검하면서 준비한 버스에 올라타고 춘천소양강으로 향하면서 통일 전망대를 거쳐서 가신다며 모두들 마음이 들떠 계시며 지나간 이야기에 여념이 없으셨습니다. 단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단 하룻밤만 지내고 전쟁터로 가신 할아버지를 기다리다 벌써 팔십이 넘었다며 아직도 어느 날 문득 할매 나요! 고생했지?하며 문을 열고 들어오실 것만 같다면서 정말 돌아가신 것 같지 않다는 이야기, 아직도 전사 통지서만 받았지 시신도 못 봤다는 이야기,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도 몇 년이 지난 후 들었고 지금도 거짓말 같다는 이야기 등 등 잠시도 잠잠한 시간이 없으셨습니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어느덧 강원도로 들어섰고 어느덧 어느 휴게소에 잠시 하차하여 화장실도 가고 잠시 쉬기로 하였습니다.
기사의 안내로 화장실을 다녀온 할매 한분이 갑자기 내리시더니 38선 휴게소란 안내 표지 석으로 달려가 차디찬 돌덩이를 쓰러 안고 통곡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주름진 손바닥으로 남편인양 쓰다듬고 주름진 골골이 눈물이 쏟아지고 쓰러져 우시는 것이었습니다.
50년 전 38선 부근에서 전사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다고 하시며 내가 왔는데도 왜 아무 말이 없느냐며 날 50년 동안 혼자 내버려 두고 왜 말 한마디 없느냐며 ........
우리는 말리지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의 가슴 한복판에 화석으로 박혀있는 38선의 남편은 아직도 꿋꿋히 살아 계셨습니다. 지울 수 없는 활짝 핀 진달래로 남아 할머니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 뒤 얼마 후 할머니는 뇌출혈로 할아버지 곁으로 가셨습니다. 오늘도 할머니 댁을 지나며 문득 할머니께서 늘 앉아 계시던 봉당 앞에 추운 줄도 모르고 앉았습니다. 손가락 마디마디 관절이 틀어지고 쑤셔오는 아픔도 시려오는 외로움도 남몰래 삭히시며 하나의 여자였고 어머니였고 딸이었던 할머니 …….
아마도 오늘같이 추운 날 두 분은 따뜻한 아랫목에서 그동안 못다 나누신 사랑을 화롯불 돋우며 도란도란 나누실 것입니다
이제는 그 가슴에 박힌 그리움에 진달래 화석이 활짝 피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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