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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마산]순국선열의 날을 아시나요?
부서 보훈과
순국선열의 날을 아시나요? 마산보훈지청장 류 대식 경남신문 16일자 기고게재 요즈음 기상이변이라고 할 만큼 변덕스러운 날씨는 우리가 처한 오늘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억측일까요? 북한의 핵실험 사태며 부동산문제 등 감당하기 어려운 우리주변 생활환경의 변화가 그야말로 스피드시대답게 홍수처럼 밀려와서 저같이 -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 고민을 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바쁘게 살다보니 우리의 지난 과거를 되돌아보고 오늘의 좌표를 설정하는 일이 어쩌면 사치일는지도 모르지만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똑 같은 어리석음을 되풀이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께서도 각종행사 시에 국민의례를 하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해보신 경험이 많을 것입니다만 “순국선열”이 과연 어떤 분들인지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에서 순국선열이라함은 “일제의 국권침탈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하기위하여 항거하다가 그 항거로 인하여 순국한 자로서 그 공로로 건국훈장 · 건국포장 또는 대통령표창을 받은 자”를 말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의병항쟁, 독립군, 광복군 활동 및 의열투쟁, 학생운동, 문화운동, 애국계몽운동 등에 투신하시다가 사망 또는 신체적 장애를 입거나 영어생활을 하신분과 독립운동의 공적이 현저한 분 중 광복이전에 별세하신 분들을 의미합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통령을 역임하신 박은식선생의 저서“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의하면 3 · 1운동의 경우만 보더라도 현장에서 피살 순국하신 분이 7,500명, 부상15,961명, 피체되어 옥고를 치르신 분이 70,418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현재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순국선열의 유족은 586명에 불과합니다. 이는 수많은 분들의 거룩한 희생을 제대로 찾아서 예우해드리지 못하는 동안, 무심한 세월이 흘러갔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현행제도상 순국선열의 자녀와 손자(호주승계, 1분)에게만 보상을 하고 있는데 기인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침 오는 17일은 이런 훌륭한 조상들인 애국선열을 기리는 “제67회순국선열의 날”입니다. 순국선열의 날은 광복이전까지는 임시정부주관으로 행사를 거행하였고, 1946년부터는 민간단체에서, 1962년부터 1969년까지는 국가보훈처에서, 1970년부터 1996년까지는 다시 민간단체 주관으로 현충일 추념식과 포함하여 거행하다가, 1997년 정부가 순국선열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복원하고 그 이후 정부주관의 기념행사를 거행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더욱 공고히 하고 애국정신을 선양한다는 의미에서 매우 뜻 깊은 일이라 하겠습니다. 65년 전인 1939년 11월 2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에서 11월17일을 법정기념일로 정한 의미를 되새겨 보면 이날이 바로 대한제국의 국권을 실질적으로 상실하게 한 을사늑약이 체결된 날입니다. 1905년 국망을 전후하여 수많은 선조들이 구국을 위하여 투쟁하시다가 순국하여, 이날을 기념일로 정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지도상에서 사라진 것을 말하면 경술년 8월 29일의 합병발표는 그 형체만 남았던 국가가 종국을 고하는 절차였을 뿐이며 을사년 보호5조약으로 말미암아 국가의 운명이 결정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뜻 깊은 날을 맞아 이날만큼은 선열들의 거룩하신 희생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선열의 얼과 위훈을 기리도록 하는 일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책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만이라도 교육현장에서는 물론이고, 가정과 직장에서도 자녀나 동료 후배들과 순국선열의 높으신 뜻을 화제로 삼아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의 번영된 우리조국 대한민국은 순국선열의 피와 땀과 눈물위에 이룩된 것임을 잊지 말고, 아무리 어려운 시련이 닥치더라도 굳건히 극복하는 의지를 우리 모두가 다짐하는 그런 순국선열의 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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