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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서부보훈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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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운·장인환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행사, 국내외에서 의미있게 개최
부서 보훈팀
미국 샌프란시스코 페이역 부두에서 일제의 앞잡이인 미국인 스티븐스를 주살함으로써 한국인의 독립정신을 세계만방에 알린 “전명운·장인환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식”이 3월 23일(일) 오전 11시 30분에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죽암전명운의사기념사업회(회장 전봉훈) 주관으로 개최된다.

이날 추모식은 김 양 국가보훈처장, 김국주 광복회장, 광복회원, 시민과 학생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약전봉독, 김양 국가보훈처장·김국주 광복회장 기념사, 전명운 애국가와 순국선열의 노래, 헌화·분향, 조총 및 묵념, 만세삼창의 순으로 진행된다.

특히, 이날 공연되는 "전명운 애국가"는 스티븐스를 저격하고 현장에서 체포된 전명운 의사가 미국 경찰서에 구금되어 있을 때 작사한 것으로, 1908년 3월 28일자 "공립신보"에 게재되었던 것을 기념사업회에서 발견하여 방기남씨에게 작곡을 의뢰하여 1996년부터 행사곡으로 불리어오고 있다.

또한, 의거 현장인 샌프란시스코에서도 “국제학술심포지엄”과 “페리의거 100주년 기념식"이 개최된다.

3월 21일 오전 10시(한국시간 3.22일 오전 4시) 독립기념관 주관으로 샌프란시스코 힐튼호텔 볼룸에서 개최되는 국제학술심포지엄에는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소장 한시준 단국대 교수)와 리차드 김(UC California, David 교수) 등 국내외 학자들이 참여하여 "미국의 대한정책과 스티븐스", "장인환·전명운의 생애와 활동" 등 6개분야에 대한 주제발표와 토론을 통해 의거의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한다.

그리고, 3월 22일 오전 11시(한국시간 3.23일 오전 5시)에 페리빌딩 시계탑 광장인 Justin Herman Plaza에서 정부를 대표하여 참석한 백창기 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 위원과 구본우 주샌프란시스코 총영사, 이석찬 샌프란시스코지역 한인회장, 김승리 미주한인회총연합회 회장과 현지에 거주하고 있는 이하전·장종원 애국지사 및 독립유공자 후손, 동포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페리의거 100주년 기념식”이 거행된다.

“페리 의거”는 1908년 3월 23일의 일제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하려는 대한제국 외교고문 스티븐스를 주살한 것으로서, 1908년 3월 1일 일제의 선전활동을 하고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스티븐스는 기지회견에서 을사늑약을 비호하고 한국을 비판하는 내용의 망언을 하였고, 미주 한인의 독립운동단체인 공립협회(共立協會)와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 회원들이 방문 항의하자 매국노 이완용(李完用)을 충신으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한국과 동양의 행복이라고 하였으며, 한국인들은 우매하여 독립할 자격이 없다고 하는 등 폭언과 궤변을 서슴치 않았다.

3월 22일 공립회관에서 개최된 공동회에 참석한 대동보국회의 장인환과 공립협회의 전명운은 스티븐스를 사살하기로 결심하고, 3월 23일 페리 부두에 도착한 스티븐스를 전명운 의사가 저격하려 했으나 불발되어 격투를 벌이던 중 장인환 의사가 스티븐스를 저격하여 이틀 뒤인 3월 25일 사망하였다.

전명운 의사는 구속 기소된 지 97일 만인 1908년 6월 27일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석방되었으며, 장인환 의사는 종신형에서 25년형을 선고받고 1919년 1월 가석방되었으며, 1924년 4월 10일 자유의 몸이 되었다.

정부에서는 전명운·장인환 의사의 공적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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