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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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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국문) - 우리청소식(경북남부보훈지청) 상세보기 - 제목, 부서, 내용, 파일, URL 정보 제공
[경주]호국백일장 고등부 산문 은상작품 게재
부서 보훈과
(2007나라사랑 큰 나무 청소년 호국백일장 )
                                     고등 산문 은상     
                                       경주여고 1년 손희애
강  물
2007년 6월6일, 고등학생이 되어서 하루하루 피곤함과 맞서
싸우는 중에 맞는 현출일이라서 그런지 애국심을 되새겨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오랜만에 맞는 휴식이라서 자고 싶은 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담임선생님이 태극기는 꼭 자기손으로
걸어보라는 당부도 잊은 채로 그 동안의 피로를 풀겠다는 생각만으로 누워있었다. 그 때, 엄마가 TV켜는 소리가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나는 뭔가에 이끌린 것처럼 어느샌가 거실로 나가서 TV앞에 앉았다. TV에서는 현충일특집으로
6.25전쟁에 대해서 방영하고 있었다. 사실 17년을 살면서도 현충일의 의미를 제대로 몰랐던 터라 이 프로그램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TV에 집중했다. TV에서는 6.25전쟁을 겪는 동안의 그 참혹함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비참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처참하고 경악을 금할 수 없었지만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장면들은 사람들이 피신해 있는 장소에 폭탄을 설치해서 죽여버리고서는 그 시신을 장짝 취급하면서 강물에 던지는 모습. 그 시신들로 인해 맑고 깨끗한 강물이 피바다가 되어버리는 모습.부모의 생사도 모른 채 남매가 서로를 꼭 부등켜 안고 있는 모습, 지게위에 아이를 태우고 허겁지겁 뛰어가는 모습, 신발도 신지 못한 채로 길 한가운데서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 등이 있다. 이 장면 모두가 그 당시의 참혹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평소에는 아무리 슬픈 드라마를 보아도 울지 않는 나였지만 이런 것들을 보면서 어느샌가 내 눈가는 촉촉이 젖어있었다. 눈물을 훔치고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대문으로 뛰어가 태극기를 걸었다. 그리고 나서 컴퓨터로 현충일의 뜻을 찾아보았다. 현충일- 나라를 위하여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고 그 뜻을 위하여 제정한 날, 이 뜻을 본 나는 그제서야 그 참뜻을 이해하고 그 아픔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컴퓨터로 6.25전쟁의 사진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던 나는 컴퓨터를 오래해서 그런저 피곤에 지쳐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러다 잠시 후,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나는 어느 혼잡한 농촌거리에서 허름한 옷을 입고 서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어리론가 급히 가고 있었고 무엇인가 펑펑 하면서 터지는 소리가 들여왔다. 나는 아는 사람을 찾아보려고 노력해 봤지만 헛수고 였다. 모두들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서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이 걸음을 제촉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어 발검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논두렁을 지나가는 탱크가 보였다. 21세기에 왠탱크? 갑자기 무슨 훈련이나 하나 싶어서 주위를 자세히 둘러보니 그곳은 내가 아까 TV에서 본 농촌이였다. 두려웠다. 그럼 난 죽는건가?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라서 그냥 서있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내 어깨를 건드렸다. 내 동생이였다! 너무 기쁜 나머지 내 동생을 꼭 껴안았다. 내 동생은 아무말도 없이 내 손을 잡고 걸어갔다. 우리들은 산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동굴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그곳에 대피하려고 모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그곳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좀전에 TV에서 본 참혹한 현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 동생은 내 팔을 계속 잡아끌었고 나는 완강히 거부했다. 그러자 내 동생은 나를 포기했다는 듯이 혼자 뛰어가버렸고 나는 풀숲으로 숨었다. 동생을 데려와야 했지만 이제 와서 나간다면 모두 발각될 것 같았다. 그러나 곧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커다란 폭발음이 들리더니 동굴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눈물이 흘렀지만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상황을 지켜봤다. 곧 사람들이 몰려와서 내 동생의 시신을 강에 던졌다. 강물에 둥둥떠있는 내 동생의 시신을 모래주머니를 달아서 가라앉혀 버렸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나는 “안돼!”라는 소리를 지르며 숲에서 뛰어나왔다. 그 순간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배개가 축축히 젖어있었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6.25전쟁의 참혹함을 꿈에서지만 그대로 보고 느낀 나는 생각했다. 내가 꾼 꿈의 뒤 즉 6.25사건의 마무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맞서 싸운 그들의 희생이 가져다준 숭고한 교훈을, 무망하지 않았던 그 용기를 잊지 않아야겠다고, 또한 그들의 정신을 기억하는 것이야 말로 호국보훈의 전정한 의미를 깨우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비록 꿈이였지만 내 동생의 피로 물든 그 강물에 담긴 아픔을... 그리고 맞서 싸운 이들의 정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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