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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강릉)연해주 항일운동 대부 최재형
부서 보훈과
  최재형(1860∼1920) 선생은 일제 강점기 러시아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였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의 현지 후원자였을 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재러 항일 의병조직인 ‘동의회’를 결성해 1910년대 국내 진공 작전을 전개하기도 했다. 역사소설가 이수광씨는 소설 ‘대륙의 영혼 최재형’에서 ‘한국의 체 게바라’라고 칭했고, 박환 수원대 교수는 29일 출간하는 평전에서 ‘시베리아 한인 민족운동의 대부’라고 평가했다.
KBS 1TV의 역사다큐멘터리 프로그램 ‘한국사 전’은 3·1절 특집으로 독립운동가 최재형의 삶과 업적을 조망하는 ‘잊혀진 기록,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편을 3월 1일 오후 8시10분 방송한다. 함경도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아홉살 때 부모를 따라 러시아 최초의 한인 마을인 블라디보스토크의 지신허(地新墟)로 이주한 뒤 항일 무장세력에 무기와 의복 등을 지원한 그의 삶과 사상의 궤적에 초점을 맞췄다.
러시아 군납 사업 등을 통해 큰돈을 번 그는 언론·교육·경제 등에서 연해주 한인들의 역량 강화에 힘쓰다가 러·일전쟁(1904∼1905) 등을 겪으면서 무장 항일투쟁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그는 헤이그특사 이위종을 비롯해 이범윤, 김기룡 등과 ‘동의회’를 조직해 항일 무장세력의 군수물자를 지원하거나 함북 일대에서 일본 국경수비대와 직접 소규모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1908년 러시아국경수비대 비밀 첩보보고서를 보면 ‘최재형이 무기와 의복 구입비 1만루블을 지원했다’는 등의 기록이 남아 있다.
최재형은 하얼빈 의거에 직접 관여하기도 했다. 최재형의 딸 최을가는 회고록 ‘나의 인생’에서 “안중근 의사는 며칠간 우리 집에 머물며 아버지와 함께 거사를 계획하고 사격연습 등을 했다”고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기억했다. 러시아 혁명군의 지원을 받아 연해주에서의 항일 무장투쟁을 적극 전개하던 그는 1920년 일본군의 대대적인 연해주 소개작전 때 붙잡혀 처형됐다.
연출한 송철훈 PD는 “이념보다는 민족의 독립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노비의 자식에서 러시아 부호로, 항일 무장투쟁 대부로 끝없이 자신을 채찍질한 최재형 선생의 삶과 사상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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