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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서부보훈지청

지(방)청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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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우리고장출신 독립운동가 이기준(李己準)
부서 보훈과

 전북 임피 사람이다.
 일제는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내정을 간섭하여갔다. 나아가 1907년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한 후 정규군인 진위대와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였다. 이와 같이 국망의 조짐이 심회되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와 항쟁하였다.
 1907년 8월부터는 해산군인들이 의병진에 가담함으로써 전국적인 항쟁으로 발전하였고 참여계층도 유림,농민,포수,해산군인을 비롯하여 상인, 광부 등의 평민들이 대거 참여하여 국민전쟁의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당시의 의병전쟁은 처음에는 전기의병과 같은 대회전 방식이었으나 1906년 말부터는 소부대에 의한 유격전 방식으로 변해 갔다. 때문에 의병의 거점도 향교 같은 곳이 아니라 읍성이나 산성이었고 나중에 유격전으로 변해가면서는 산악으로 옮겨갔다.
 아울러 의병진의 전력도 증강되어 전국 곳곳에서 일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일부 기록에 의하면 1907년 이후 1909년까지의 의병 전사자가 10만 명으로 알려질 정도로 국권회복을 위한 의병들이 항쟁은 처절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시기에 이기준은 일제를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분연히 일어나 군사들을 규합하여 거의하였다. 그러나 1909년 5월 전북 용안군 이동면에서 군사들을 이끌고 군자금을 수합하는 등 활동하던 중 용안주재소 및 강경경찰서 일본 순사들의 공격을 받고 교전 끝에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0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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