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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서부보훈지청

지(방)청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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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우리고장출신 독립운동가 이병관(李炳寬)
부서 보훈과

전북 옥구 사람이다.
 1919년 3월 5일 중앙학교 학생으로 서울역 앞에서 벌어진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3월 4일, 서울지역 학생들은 비밀리에 회합을 거듭하여 3월 5일 대대적인 시위운동을 계획하였다. 3월 5일 아침 예정대로 서울역 광장에서 일대 시위운동이 전개되었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서울역 광장에는 시위 군중이 점점 모이기 시작하였다.
 대부분 학생들이었고 그외 다수의 청년들이 참가하였다. 중앙학교 3년생이었던 이병관도 참가하였다.
 강기덕과 김원벽이 독립기를 들고 선두에 섰다. 그 뒤를 학생,군중들이 만세를 고창하며 태극기를 흔들고 남대문쪽을 향해 나아갔다. 시위행렬이 남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경비중이던 일경이 이를 저지하였다. 그러나 약10,000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군중은 이 저지선을 뚫고 행진을 계속하였다. 그런데 강기덕과 김원벽 등 50여 명이 지나온 일경에게 피체되었지만, 시위행진은 계속되었고 보신각에 다다랐을 때 더욱 증간된 경찰대가 총검을 휘두르며 강제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이 중상을 입고 75명이 종로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이병관은 3월 9일 고향으로 내려가기 위해 서울역에 갔다가 피체되었다.
 이해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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