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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서부보훈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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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잊지못할 132년전 영종진의 호국영령
부서 보훈과
1875년 9월 22일(음력 8월 20일)은 인천 중구 영종도의 군사기지였던 영종진을 지키던 군사들이 일본 운요(雲楊)호로부터 습격당한 날이다. 당시 일본 군대는 근대화 무기로 무장한 육전대가 불을 지르기 위한 석유 무장을 갖춰 조선 수비군 35명을 무참히 살육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됐던 22일 영종진 터에서 이날을 기리는 추모제가 3회째 열렸다. 그동안 인천문화발전연구원이 추모제를 주관해 오다 이번엔 영종도 주민들로 구성된 영종발전협의회와 함께 행사를 치렀다.

역사를 망각하는 민족이 번성한 예가 없다. 자랑스러웠건 치욕스러웠건 간에 역사는 바뀔 수가 없다.

얼마 전 모 정치인이 서해 북방한계선에 대해 발언을 잘못 했다가 국민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서해교전으로 숨진 장병과 그 가족들이나, 지금도 핏발선 눈으로 적과 대치하고 있는 장병들을 생각해 보았다면 그런 말을 쉽게 하진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과거를 너무 쉽게 잊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피 흘리며 쓰러져 간 이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며, 또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영종진에서 숨진 35명에 대해 정부는 물론이고, 그 후손들마저 기억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아 안타깝다.

그동안 영종진 피습사건 관련 자료를 수집한 결과 조선 수비군은 일본 군함의 근대화 무기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당시 영종진 방어사령관이었던 이민덕 첨사는 진(鎭)을 지키지 못하고 도망을 쳤다는 죄로 곤장 100대를 맞고 풀려났다는 기록이 있다. 그의 후손들로서는 수치스러운 조상이라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죽었을 군사 35명의 영령에 대해 아무런 기억이 없다면 과연 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겠는가.

132년 전 숨져간 그 원혼들이 지금도 구천을 헤매고 있다면 애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추모비를 세우고, 조선 수군의 최정예 부대가 주둔했던 영종진을 복원해 후세에게 역사를 바로 알게 해야 한다.

영종진은 호국정신을 일깨우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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