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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북부보훈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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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몽양 여운형선생 60주기 추도식
부서 보훈과
   ◈ 19일(목) 오전 10시, 우이동 여운형선생 묘소에서 ◈
   ◈ 각계인사, 유족, 기념사업회원 등 300여명 참석 ◈
  조국광복과 민족의 통일을 위해 일생을 바치신「몽양 여운형선생 60주기 추도식」이 19일(목) 10시 우이동 묘소에서 (사)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회장 여철연) 주관으로 열렸다.
  이날 추도식은 김정복 국가보훈처장, 이수성·이해찬·한명숙 前총리, 함세웅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기념사업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여철연 기념사업회장의 식사, 추모시 낭송, 국가보훈처장의 추도사, 봉도가, 추모가에 이어 유가족 대표 여인영의 인사와 헌화·분향 순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기념사업회에서는 몽양 서거 60주년을 맞아 19일 오후 2시 서울역사박물관 강당에서 ‘몽양 여운형과 평화통일’을 주제로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한다.
  몽양(夢陽) 여운형선생은 경기도 양평(楊平)에서 출생하여 배재학당, 흥화학교 등에서 신학문을 익혔다. 1908년에는 ‘국채보상 단연동맹’을 조직하여 순회강연을 하였으며, 기호학회 평의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1910년 강릉의 초당의숙에서 민족교육에 매진하였다.
  1918년 상하이에서 상해고려인친목회를 조직하여 총무로 활동하면서 기관지「우리들 소식」을 발행하였으며, 8월에는 신한청년당을 조직하고 총무로 활약하는 한편 미국 윌슨 대통령에게 조선독립을 진정하였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파리강화회의가 열리게 되자 김규식을 초빙하여 파리강화회의 대표로 파견하였으며, 국제사회에 한국의 독립문제를 크게 부각시키기 위해 장덕수를 일본에 파견하여 2·8독립선언을 촉발케 하였다. 또한 국내에 김철, 선우혁 등을 파견하여 국내인사들과 접촉하게 하고 자신도 간도·시베리아 방면으로 가서 만세운동의 분위기를 진작시켜 나갔다.
  3·1운동 직후 1919년 4월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외무부 차장, 의정원 의원등을 역임하였으며, 11월 일본의 심장부인 동경을 방문하여 일본 고위 관료들을 상대로 한국독립의 정당성을 역설하여 일본은 물론 국제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1920년 조국 광복을 위해 공산당에 가입하였으며, 1922년 1월 모스크바에서 극동피압박민족대회가 열릴 때 조선민족 대표의 일원으로 참석하여 조국의 독립을 역설하였고, 10월 상해로 돌아와 독립운동의 장기적 구도아래 백범 김구 등과 함께 한국노병회를 조직하여 군사적 투쟁도 준비해 갔다.
  일본의 패망을 확신한 선생께서는 1944년 8월 비밀리에 건국동맹을 결성하여 본격적으로 조국광복을 준비하셨으며, 광복후에는 건국준비위를 조직하고 좌우합작의 선봉에서 활약하시다 1947년 극우파  흉탄에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2005년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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