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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보훈지청

지(방)청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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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for you)우리고장 현충시설(외솔 최현배선생 흉상)
부서 보훈과

외솔 최현배선생 흉상 

■ 위    치   울산광역시 중구 서동 311(병영초등학교 내)
■ 관 리 처   병영초등학교
■ 건립일자   1996. 8. 4
■ 관리번호   41-1-3
■ 규    모   가로 1m, 세로 0.7m, 높이 2m

☞ 외솔 최현배 선생(1894. 10. 19 ~ 1970. 3. 23)
    외솔 최현배 선생은 1894년 10월 19일 울산군 하상면 동리에서 태어나 6세 때부터 고향 마을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하였고 일신학교(현 병영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가 경성보통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10년 동안 교육철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오늘의 연세대학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연구했다. 선생은 주시경 선생의 말과 글을 통한 민족주의 정신을 이어받아  "조선어연구회"의 후신인 "조선어학회"를 1931년 창립하였다. 이를 통해 우리 민중을 계몽하고 민족주의 정신을 드높여 광복의 기초를 마련했다. 1933년에는 선생이 앞장서 우리말의 맞춤법과 표준어를 정리한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만들어 반세기 동안 우리말의 규범으로 삼았다. 1942년 10월에 일제가 민족탄압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어 말살정책을 대폭 강화하고 한글 연구자들을 투옥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조선어학회사건으로 구속되어 함경남도 홍원경찰서에서 일제의 잔혹한 고문과 악형을 받았으며 3년 가까이 옥고를 치르던 중 8·15광복을 맞아 출옥했다. 이후 선생은 "조선어학회"를 이어받은 "한글학회" 이사장으로 배달말 사랑과 한글만 쓰기 운동을 위해 평생 노력을 기울였다.
    민족의 독립과 한글을 지키기 위해 헌신해 온 외솔의 참뜻을 기리기 위해 병영초등학교 총동창회에서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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