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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12월의 호국인물 신라 거칠부 장군 선정
부서 보훈과
 전쟁기념사업회에서 국가를 위해 헌신한 선열들의 위대한 애국심과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월 선정하는 이달의 호국인물로 12월달에는 신라 거칠부 장군이 선정되었다.
        
거칠부 장군은 신라의 왕권을 확립하고 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다진 내물왕(奈勿王)의 5대손으로 비범한 용모와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어려서부터 왕족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승려가 되어 불도와 학식을 닦았다. 그는 이미 불교가 융성한 고구려에도 들어가 당시 유명한 고승인 혜량법사의 문하에서 불법을 공부하고 수행했으며, 귀국 후에는 관직생활을 시작하여 직위가 대아찬(大阿飡)에 이르렀다. 특히 545년(진흥왕 6)에는 진흥왕의 명을 받아『국사(國史)』를 편찬하는 등 문사로서 큰 공을 세웠으며 이후에는 무사로서 영토확장의 주역으로 크게 활약하였다.
 

당시 백제는 고구려에 빼앗긴 한강유역을 되찾기 위해 북진의 기회를 노리며 군비강화에 힘쓰고 있었고, 신라도 고구려의 강력한 남하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백제와‘나제동맹’을 맺고 551년(진흥왕 12) 거칠부로 하여금 고구려를 공략케 했다. 백제가 먼저 평양성을 격파하여 개로왕 때 빼앗겼던 땅을 회복하고 있었을 때, 거칠부는 구진(仇珍), 비태(比台) 등 8명의 장군을 거느리고 죽령을 넘어 고구려를 쳤고 승리의 기세를 타고 10여 군을 점령했다. 이 죽령 이북땅을 확보함으로써 신라는 곧이어 충주지방을 거쳐 한강유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거칠부 장군의 활약에 힘입어 비로소 한강유역을 확보하게 된 신라는 한강을 통해 황해를 거쳐 중국과 직접 교류함으로써 동아시아 국제무대에 진출, 국제적 위상을 높이게 되었다. 또한 한강유역의 경제력을 확보하고 한반도의 주도권을 잡아 장차 삼국통일의 기틀을 닦을 수 있었다. 거칠부 장군의 이러한 공은 진흥왕순수비에 기록되어 있다.
 

거칠부 장군은 576년(진지왕 원년) 상대등(上大等 : 현재의 총리)이 되어 군사와 국가의 정사를 총괄하다가 579년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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