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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방보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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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독립유공자 훈장전수식 개최
부서 홍보교육팀
2008.7.15(화) 11:00 부산지방보훈청 청장실에서 고 변상복 선생에 대한 독립유공자 훈장증서 전수식이 열렸습니다.
이날 증서는 선생의 양손이신 변재예씨가 전수받았으며, 안중현 청장님은 선생의 독립운동에 투신한 공로를 치하하고 유족들을 위로했습니다.
변상복 선생은 경상남도 창원(昌原) 사람으로1919년 4월 3일의 진전면(鎭田面)·진북면(鎭北面)·진동면(鎭東面)의 연합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28일의 진동면 고현리(古縣里)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한 후, 피신한 변상태(卞相泰)·권영대(權寧大)·권태용(權泰容)에 의해 계획되었는데, 그는 이곳의 청년유지 변상섭(卞相攝)·황태익(黃泰益)·김영종(金永鍾)·구수서(具守書)·변상술(卞相述)·변우범(卞又範) 등과 함께 연락을 취하며, 4월 3일 인근의 3개면민들을 동원하여 진전면 양촌리(良村里)의 냇가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했습니다.
4월 1일 변상태·황태익 등은 변우범의 집에 모여 회의를 한 후, 동리 서당에서 태극기를 제작하여 미리 동리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인근지역을 순회하며 주민의 참여를 촉구했습니다. 4월 3일 오전 9시, 수천명의 시위군중은 양촌리 냇가에 집결하여 변상섭의 독립선언서 낭독에 이어 변상태가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양촌리 계곡은 온통 태극기의 물결속에 독립만세 소리로 진동했습니다.
이에 시위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헌병주재소가 있는 진동면으로 시위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이때 그들대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 뒤, 진전면으로부터 시위행진하여 오는 시위대열을 기다리던 진동면민들도 이에 가세하여 시위군중은 5천여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오후 2시, 시위대열이 진북면 사동리(社洞里) 다리앞에 이르렀을 때, 급보를 받고 출동한 일본 헌병과 보조원 8명 및 재향군인 30여명은 시위군중과 충돌하였습니다.
일제와 피비린내 나는 육박전이 벌어져 다수의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을 때, 마산(馬山)에서 응원 출동한 일본군 야포대대 군인이 현지의 일본 헌병, 보조원, 재향군인과 합세하여 무차별 사격을 가하였습니다. 이 야만적인 발포로 8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22명이 부상당하였는데, 이때 그도 흉탄에 맞아 순국하였습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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