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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동부보훈지청

지(방)청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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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우리지역의 독립운동가 소개 - 의병장 강무경 선생
부서 보훈과

  ◎ 의병장 강무경 선생 (1878 ~ 1910)
    - 1978년   무주군 설천에서 출생
    - 1908. 3 ~ 1909. 8  의병활동
    - 1910년   대구교도소에서 순국

  전북 무장군 풍면 설천(茂長郡 豊面 雪川)에서 출생하였다.
  필묵상(筆墨商)을 경영하고 있던 그는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통탄하고 있던 중 유지인 심남일(沈南一)로부터 의병을 일으키자는 격문을 받고서 결의 형제를 맺고 함께 김 율(金 聿)이 사망하자 심남일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그의 선봉장이 되었다. 그 이후 그의 의병생활은 심남일과 일체가 되어 시종을 같이하게 되었다.

그의 부대는
전 투 일 전 투 장 소
1908년 3월 7일 강진 오치동(康津 吾治洞)
4월 15일 장흥 곽암(長興 藿巖)
6월 19일 남평 장담원(南平 長淡院)
6월 25일 능주 노구두(綾州 老狗頭)
7월 30일 영암 사촌(靈巖 沙村)
8월 1일 나주 반치(羅州 盤峙)
9월 20일 장흥 신풍(長興 新豊)
10월 9일 해남 성내(海南 城內)
10월 27일 능주 돌정(綾州 石亭)
등지에서 전투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능주 돌정의 전투에서는 심남일과 강무경이 모두 병석에 눕게 되는 불운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왜병 삼백여 명과 접전하여 적지 않은 성과를 올렸다.

  다시 이듬해인 1908년 봄부터 전투를 재개하여 3월 8일 남평 거성(巨聲), 4월 2일 능주 풍치(風峙), 5월 12일 보성 천동(泉洞) 등지에서 크게 접전을 하여 적 수십 급을 사상하고 다수의 무기를 노획하였다.

  그 후 해산 조칙(詔勅)을 받고 1909년 7월 21일 의진을 부득이 해체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나 해산 후에도 강무경은 심남일과 거취를 함께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신병 치료차 이전의 격전지였던 풍치의 바위굴에서 은신생활을 하던 중 적병에게 발각되어 8월 26일 함께 체포되어 9월 2일 광주로 이송되었다가 12월 15일 대구 감옥소로 이감되었다.

  이곳에는 의병장 박영근(朴永根) 오성술(吳成述) 전해산(全海山 一名 垂鏞)도 수감되어 있었다.

  결국 이곳에서 교수형에 처해져 32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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