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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청소식

지(방)청소개

국가보훈부(국문) - 우리청소식(경북남부보훈지청) 상세보기 - 제목, 부서, 내용, 파일, URL 정보 제공
[경주]우리고장출신 독립운동가-최재소(崔在韶)
부서 보훈과
경북 울진(蔚珍) 사람이다.
1933년 울진적색농민조합(蔚珍赤色農民組合)을 조직하고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등 활동하였다.
평소 민족의식이 투철하던 그는 사회주의 사상에 공명하여 오던 중, 윤두현(尹斗鉉)·진기열(陳基烈) 등이 1932년 11월 울진적색농민조합의 결성을 발기하자 이에 참여하였다.
그리하여 1933년 3월 29일 울진군 북면(北面) 덕구리(德邱里)에서 최재소를 비롯한 윤두현·진기열 등은 울진적색농민조합의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강령을 채택하였다. 조직의 강령은 농민의 경제적·정치적 의식의 촉진, 봉건적 착취제도의 부인 등이었으며 슬로건은 정치적 압박기관 및 경제적 착취기관의 박멸, 봉건주의 타파, 미신 타파, 일본제국주의 반대 등이었다.
또한 진기열을 중앙사무국 책임, 남왈성을 조직선전부 책임, 최재소를 부인부 책임으로 선임하고 각리에 독서회와 야학을 설치하여 청소년들에게 항일의식을 고취하기로 결의하였다. 이어 4월 간부회의를 개최하여 동 조합의 산하에 소년부를 설치키로 하였다.
1933년 6월 최재소는 진기열, 남왈성과 간부회의를 개최하고 울진군·삼척군·봉화군의 군계(郡界)인 가사고개에 실업청년들을 수용하고 양잠업(養蠶業)을 운영하면서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한편, 수익금을 운동자금에 충당코자 하였으나 기후여건이 맞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같은 활동 사실이 발각되어 최재소를 비롯한 동지들은 1934년 8월경 일경에 체포되고 말았다.
그는 1935년 7월 8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가혹한 고문의 여독으로 옥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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