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청소식

지(방)청소개

국가보훈부(국문) - 우리청소식(경북남부보훈지청) 상세보기 - 제목, 부서, 내용, 파일, URL 정보 제공
[경주]우리고장출신 독립운동가-최경호(崔京浩)
부서 보훈과
경북 울진(蔚珍) 사람이다.
1918년경 만주 서간도에서 독립군 양성을 위해 조직한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졸업하였다고 하며, 그 후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그가 활동한 조선혁명군은 1929년 12월 20일 결성되었으며, 조선혁명당의 군대이다. 이 조선혁명군은 선언서에서 "국민부로부터 엄연히 분립하여 혁명운동에 대한 군사적 역할을 전적인 임무로 한다"고 발표하였다. 아울러 조선혁명군은 독립하여 혁명사업에 종사하고 무기는 혁명군인만이 휴대케 한다, 혁명군이 지도기관으로 각 대에서 대표자를 뽑아 군사위원으로서 군사위원회를 조직케 하는데 위원수는 14명으로 한다, 군사위원회에서는 책임자 3명을 선출한다. 그리고 그 명칭을 혁명군 총사령에 이진탁(李辰卓), 부사령에 양세봉(梁世奉), 참모장에 이웅(李雄)이 임명되고 종전에 10개 부대로 편성되었던 각 지방군은 7개대로 개편되었다.
최경호가 참여한 조선혁명군은 창립선언서에서 현 단계에서의 자신의 임무에 대하여, 첫째, 재만한국인 대중에게 혁명의식을 주입하고 군사학술을 보급시켜 혁명전선의 기본진영을 확립하고, 둘째, 정치학식과 군사기능이 실제 단체의 정치운동에 적임될 수 있는 기간 인재를 양성하고, 셋째, 국내·국외에서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건설을 파괴하고, 그 주구배의 기관을 청소하여 기타 일체 반동적 악세력을 박멸하기로 하고 용감하게 전진하여 대중의 당면 이익을 옹호하여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고자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최경호는 1936년 6월말에는 조선혁명군의 제2소대장으로 활동하였으며, 당시 총사령은 양세봉(梁世奉), 제1 지휘부장(指揮部長)은 윤일파(尹一波), 제2중대장 조화선(趙化善) 등이었다.
그 후 1939년 3월 26일 최경호는 안수를 받고 통화교회(通化敎會)의 장로가 되어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파일
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