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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청소식

지(방)청소개

국가보훈부(국문) - 우리청소식(경북남부보훈지청) 상세보기 - 제목, 부서, 내용, 파일, URL 정보 제공
[경주]우리고장출신 독립운동가-주유만(朱有萬)
부서 보훈과

경북 울진(蔚珍) 사람이다.
1931년 울진공작당(蔚珍工作黨)에 참여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등 활동하였다. 그는 1931년 윤두현(尹斗鉉)·이우정(李愚貞) 등이 울진공작당(蔚珍工作黨)을 조직하자 이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이들은 1931년 9월 동당의 비밀총회를 개최하고 운동방침을 협의한 결과 단체명을 극동공산주의자동맹(極東共産主義者同盟)으로 개칭하는 한편, 기존의 울진노동조합 내에 세포조직을 결성하여 동 조합을 혁명적으로 지도개조할 것을 결정하였는데 주유만이 그 책임자로 선정되었다.
이에 주유만은 동년 9월 향리인 울진면 호월리(湖月里)에 세포조직을 결성하고 운동자금의 수합방안 등을 협의하였다. 그러나 12월 조직내에서 지도방침 등에 대한 이견이 발생하여 극동공산주의자동맹은 해체되고 말았다.
이후 1933년 3월 그를 비롯한 이우정, 진기열(陳基烈) 등은 사회주의 운동조직의 재건이 필요하다는데 뜻을 함께 하고 그 방안을 협의하였다. 이어 4월 울진군 서면(西面) 불영사(佛影寺)에서의 모임에서는 울진노동조합의 혁명적 개조작업에 착수키로 하고 동 조합의 기금정리를 위한 교섭위원과 실행위원을 선임하였는데 주유만은 실행위원에 피선되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조합의 개조를 위해 조합장 진상철과 교섭하는 등 활동하다가 1934년 8월경 일경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그는 이 일로 인하여 1935년 7월 8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으로 징역 2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그는 일경의 가혹한 고문과 옥고의 여독으로 정신이상이 되어 출옥 후 향리를 떠돌다 객사하고 말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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