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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보훈지청) 2012년 2월, 이달의 6.25전쟁영웅 랄프 몽클라르 프랑스 육군 중령
부서 선양팀

 

2월의 6.25전쟁영웅 랄프 몽클라르 중령

(1892. 2. 7 ~ 1964. 6. 3.)

◈ 계급보다 중요했던 자유에 대한 신념 ◈

 

 

 국가보훈처는 ‘2012년 2월 6.25전쟁영웅’으로 랄프 몽클라르 프랑스 육군 중령을 선정했다. 몽클라르 중령은 전투에서 18번이나 부상을 입고, 18번의 훈장을 받은 프랑스의 전쟁영웅이었다. 육군사관학교인 생시르 4학년 생도 시절인 1914년 소위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엔 프랑스군이 독일군을 상대로 유일하게 승리를 거둔 나르비크 전투(Narvik Battle)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의 본명은 라울 마그랭-베르느레(Raoul C. Magrin-Vernerey)인데, 나치 치하 레지스탕스(자유 프랑스군) 활동 때 암호명으로 쓰던 몽클라르로 개명했다.


 1950년 8월 프랑스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예비역을 주축으로 미군 2사단 산하의 파견 부대(1개 대대 병력과 해군 군함 1척) 창설을 발표하자 3성(星) 장군으로 퇴역했던 몽클라르 장군은 58세의 나이로 지휘계통이 애매하지 않도록 중령(대대장)으로 5단계나 계급을 낮추어 지원했다. 상부에선 국방차관이“장군이 어떻게 대대장을 맡느냐”고 만류했지만 그는 “계급은 중요하지 않다. 곧 태어날 자식에게 유엔군의 한 사람으로서 평화라는 숭고한 가치를 위해 참전했다는 긍지를 물려주고 싶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몽클라르 장군이 이끈 프랑스 대대는 1950년 11월 29일 부산항에 도착하여, 1951년 1.4후퇴 다음 날인 1월 5일 미군 제2사단 소속으로 최전선에 배치되었다. 1월 쌍터널 전투 수훈으로 미대통령 부대표창을 받았고,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 전투에서 중공군과 북한군의 공세를 막아내어 유엔군이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지평리 전투 당시 프랑스군은 중공군 3개 사단에 완전히 포위된 상황이었으나 사흘간 전 장병이 철모를 벗어던지고 머리에 수건을 동여맨 채 백병전을 벌여 중공군을 격파했다. 유엔군이 중공군을 상대로 거둔 첫 승리였다. 몽클라르 장군은 “‘베르됭전투’(제1차 세계대전 때 가장 치열했던 전투)와 비슷했다”고 회고하곤 했다.


 프랑스 혁명 가치인 ‘자유’에 대한 신념이 강했던 랄프 몽클라르 프랑스 장군은 1964년 6월 3일, 전투로 인한 부상 후유증으로 72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그러나 한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 참전한, 고귀한 그의 신념은 오늘날 발전된 대한민국의 초석이 되었음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며, 몽클라르 장군은 6?25전사의 위대한 전쟁영웅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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