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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보훈청

지(방)청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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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조영진 애국지사 생신 축하
부서 총무과
  서울지방보훈청(청장 장대섭)에서는 4월 19일 생신을 맞이하신 조영진 지사님 댁을 방문하여 생신 축하 케잌과 꽃다발 그리고 감사의 뜻을 담은 작은 선물을 전달하였다.
  국가보훈처에서는 선양사업의 일환으로 희망이 보이지 않던 암울한 시기에 조국독립이란 일념으로 신명을 받치신 지사님들의 고귀한 희생에 감사하고 이분들의나라사랑 정신을 이어받기 위하여 애국지사님의 생신일에는 간부 직원들이 직접 방문하여 감사의 뜻을 전하는 행사를 전개하고 있다.
  이번에 생신을 맞이하신 조영진 지사님은 경북 문경 사람이다. 1941년 대구사범학교(大邱師範學校) 3학년 재학 중 민족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결성한 학생비밀결사 ‘문예부(文藝部)’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문예부는 1938년부터 8·9·10기생들이 민족성이 담긴 역사서나 문예작품을 읽기 위해 비밀리에 운영한 윤독회를 기반으로, 1940년 11월 이태길의 하숙집에서 강두안·박찬웅·유흥수·문홍의·이동우·김근배 등 8기생 9명이 결성한 비밀결사였다. 이들은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표면상으로는 문예활동을 표방하여 ‘문예부’라는 조직체를 발족시키고 부서를 결정하였다.
  문예부는 1) 부원은 비밀을 엄수할 것 2) 부원은 매주 토요일 각자가 쓴 작품을 가지고 참석하여 이것을 감상 비판하고 서로 의견을 교환할 것 등을 활동 방침을 정하였다. 또한 학교 내 다른 비밀결사인 연구회와 다혁당(多革黨) 등의 구성원들과도 교류하면서 민족의식을 키워 나갔다.
  1941년 3월, 문예부는 부원들의 작품을 수집·정리하여 비밀출판물로서『학생(學生)』을 간행하였는데 발행부수는 20여부였고 비밀을 유지하기 위하여 부원 이외에 배부하지 않았으나 연구회·다혁당 동지들에게는 회람하도록 했다.
  그러던 중 1941년 7월 중순경, 동지들의 ‘활동보고서’가 일경에 발각되면서, 9월 3일 소위 사상사건으로 체포되어 3개월 여의 옥고를 치르고 퇴학당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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