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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청소식

지(방)청소개

국가보훈부(국문) - 우리청소식(경북남부보훈지청) 상세보기 - 제목, 부서, 내용, 파일, URL 정보 제공
[경주]우리고장 출신 독립운동가-김창수
부서 보훈과
경북 영일(迎日) 사람이다.
정용기(鄭鏞基) 의진에 가담하여 경북 흥해(興海)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동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고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일제는 1904년 러시아와의 전쟁 도발 직후 곧바로 우리 정부를 강박하여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케 하고, 나아가 고문정치를 실시하였다. 이어 1905년 전쟁에서 승리하자 「을사륵약(乙巳勒約)」을 체결하는 한편 통감부를 설치하여 그들의 지배정책을 가속화시켰다. 더 나아가 1907년 헤이그 특사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곧바로 군대해산을 강행하여 우리 민족의 무력을 박탈하였다. 이러한 국가존망의 위기에 전국 각처에서는 의병이 속속 봉기하여 일본군과 친일주구들을 처단함으로써 국권회복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을사조약 이듬해인 1906년 영남에서 의병을 일으켜 북상할 것을 결심한 정용기 의병장은 경북 영천(永川)으로 내려가 통유문과 격려문을 각계 각층에 보내어 함께 의병에 참가하기를 권고하고 총 궐기를 촉구하였다. 또한 정용기는 각 지역별로 인원을 배치하여 의거 진행 계획에 대한 연락을 맡게 하였다.
김창수는 이 때 정용기의 의진에 가담하여 경북 흥해 지역의 책임을 맡았다. 그리하여 같은 해 3월 각 고을 포수(砲手) 및 민병들로 구성된 의병진이 이루어짐과 함께 의병진의 칭호를 산남창의진(山南倡義陣)이라 칭하고 진중의 부서가 정해졌다. 그는 소모장(召募將)인 자신의 매부 정순기(鄭純基)를 도와 흥해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동지 최세한(崔世翰)·정래의(鄭來儀) 등과 함께 의병 초모와 군자금 모집을 하는 한편 정세를 정탐하여 의병진에 보고하는 등의 역할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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