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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청소식

지(방)청소개

국가보훈부(국문) - 우리청소식(경북남부보훈지청) 상세보기 - 제목, 부서, 내용, 파일, URL 정보 제공
[경주]우리고장 출신 독립운동가-이태홍(李泰鴻)
부서 보훈과
경북 영일(迎日) 사람이다.
일본 장야현(長野縣) 소재 상이나농업학교(上伊那農業學校)에 유학중이던 1940년 3월, 같은 학교 기숙사에서 동향 선배 이정우(李正雨)에게 "한민족과 일인은 도저히 융합될 수 없으며 어떠한 일이 있어도 소위 내선일체론(內鮮一體論)은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어, 장차 독립된 조국의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한국어를 사용함으로써 민족교육에 대비할 것을 결의하였다. 또한 일제의 한국인에 대한 특별지원병제(特別支援兵制) 강제에도 적극 반대하기로 하였다.
1941년 2월 18일에는 일제가 강행하는 한인 지원병 모집과 창씨개명 등이 민족말살의 동화정책임을 규탄(糾彈)하고, 민족의 장래를 위해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더욱 굳게 다짐하였다.
그 뒤 상이나농업학교를 졸업하고 1943년 1월 귀국하여, 항일, 반전(反戰)운동을 전개하고 징용·징병을 피하기 위하여 부득이 영일군 농회기수(農會技手)로 취직하여 농촌계몽활동을 이용, 반전(反戰) 의식을 유포하여 일제 패망을 선전하던 중 같은 해 6월 일경에 피체되고 말았다.
1944년 2월 14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언도받고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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