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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서부보훈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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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namic 익산) 구파 백정기의사 독립운동사 초등학교 교과서 게재추진
부서 보훈과
구파 백정기 의사 독립운동 일대기를 초등학교 교과서에 게재하고자 정읍시가 다각적인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

시는 독립운동가로 잘 알려지지 않은 백정기의사의 독립운동 활약상을 초등학교 교과서에 게재하여 널리 알림으로써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계승, 발전시킴은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문화유산으로 적극 활용하고자 한 취지를 보이고 있다.

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17월(월) 오후 4시 정읍교육청에서 사회교과서 개발위원회 위원8명과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백정기의사 독립운동 일대기에 대한 게제내용 발의를 학예연구사 이민석씨로부터 이뤄졌다.

발의에서 이민석연구사는 유적현장 중심의 홍보사업은 현재 추진대로 지속 유지하면서 단계별 계획에 따라 초중고 교과서 게재를 통한 대국민 집중홍보를 실시한다는 것.

이를 위해 1단계 교과서 게재를 통한 홍보에 있어 우선 정읍지역에서 제작 사용되는 초등학교 3학년 사회교과서에 우선 게재하는 방안과 도내 공동제작 교과서, 그리고 전국에서 사용되는 초중고 교과서 게재 추진 방안을 단계적으로 진행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2단계에는 교과서 게재내용을 바탕으로 초등학교 현장학습 필수코스로 포함토록 반영할 것을 강구하고 있어 연중 기념관을 찾도록 유도하고 있다.

효창공원 삼의사묘에 이봉창, 윤봉길의사 등과 함께 안장되어 있는 백정기 의사는 1933년 중국 상해에서 일본 주중공사 아리요시아끼의 암살을 시도하다가 피체되어 1934년 6월 5일 일본 나가시키현 이사하야 형무소에서 순국한 항일애국투사로 1896년 1월 19일 부안읍 신운리에서 출생, 소년시절 현 영원면 은선리로 이주했다.

백 의사는 1914년 일본경찰 폭행을 시작으로 항일애국활동에 나서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직접행동을 결의하고, 동지를 모아 자금 모금 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1930년 "한족총연합회"의 일원이 되는 등 아나키스트로서의 활동도 전개했다.

특히 1933년 일본공사 아리요시아끼가 일본군 수뇌와 중국 친일 고관들을 모아 육삼정(六三亭)이라는 요릿집에서 주연을 연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를 타도하고 암살하고자 했던 ‘육삼정 의거’를 도모했다.

육삼정 의거의 실패로 일제에 붙잡힌 백 의사는 1933년 일본 나가사키재판소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오랜 지병으로 인해 39살의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후 조국광복 후 1946년 삼의사(윤봉길, 이봉창, 백정기)의 유골이 봉환되고 국민장을 거쳐 서울 효창공원에 안장됐고 1963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에 추서됐다.

한편 정읍시에는 이 같은 백 의사의 구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6년 (사)구파백정기의사기념사업회를 결성, 백정기의사기념관을 비롯한 백정기의사유적지 조성사업을 시작, 2004년 6월 5일 기념관을 개관하고, 현충시설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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