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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동부보훈지청

지(방)청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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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9월의 독립운동가 - 박시창(朴始昌)선생
부서 보훈과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독립기념관은 대일항전에 앞장선 광복군 지도자 박시창 선생(1903.11.5~1986.6.7)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어 가던 1903년 11월 경기도 시흥(始興)에서 백암 박은식(白巖 朴殷植)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1916년 서울 오성학교(五星學校)를 졸업한 선생은 부친 박은식의 지인을 따라 해삼위(海蔘威)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선생은 부친과 감격적인 상봉을 하였다. 그때부터 선생은 부친 박은식이 1925년 11월 타계할 때까지 그를 수행하면서 독립운동에 종사하였다.
  상해에 온 선생은 아직 스물이 채 안된 나이이지만 부친을 도와 독립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1923년경 선생은 남경(南京) 중앙대학(中央大學)에 수학하다가 휴학하였다. 남경에서 상해로 돌아온 선생은 조선인청년동맹회(朝鮮人靑年同盟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선생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혁혁한 업적을 세운 의열단(義烈團)과도 관계를 맺고 활동하였다. 이는 선생이 후일 의열단이 주축이 되었던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에 참여하여 활동하게 되는 인연이 되었다.
  1943년 8월 광복군 총사령부의 기구에 대한 일부 개편이 단행되었다. 이때 선생은 광복군 총사령부에 편입되어 고급참모(高級參謀)에 선임되었다.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에 가입하여 후보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특히 선생은 1945년 8월 한국광복군 상해잠편지대(上海暫編支隊)의 지대장에 임명되었다. 선생은 8ㆍ15 일제 패망 후 일본군에서 이탈하여 상해에 집결하였던 한적 장병 청년들을 수용하여 광복군을 확대하였다. 확대된 한국광복군 상해잠편지대는 오송(吳淞) 호강대학(滬江大學)에 주둔하였다.
  그러나 그동안 광복군 확군 활동을 지원하던 중국 국민당정부도 1945년 12월에 접어들면서 광복군의 확군 활동을 금지하였다. 따라서 선생을 비롯한 광복군 전원은 교민과 함께 개인 자격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1946년 7월 귀국 후 선생은 국군에 입대하여 중령의 계급으로 1948년 신설 제16연대 연대장, 1949년에는 제102여단장을 역임하였다. 그후 선생은 6ㆍ25전쟁에 참전하였으며, 연대장, 사단장, 군단장 등을 거쳐 1959년 6월 육군 소장으로 예편하였다.
  1976년 선생은 안춘생(安椿生)에 이어 제5대 광복회(光復會) 회장에 선임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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