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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보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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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나의 실수
부서 지도과
나의 실수 보훈도우미 임 풍 조 나의 도우미 생활은 첫 날부터 큰 실수로 시작되었다. 수혜자님이 침을 맞기 위해 한의원을 지하철 두 코스 정도의 거리를 휠체어로 잘 갔다가 집까지 무사히 도착하는데 수혜자님께서 소변이 보고 싶다는 것이다. 휠체어에서 그 분을 일으켜 세우는 순간 둘이서 마주 잡고 그 분은 왼쪽으로 나는 오른 쪽으로 동시에 머리를 박고 같이 넘어져 버린 것이다. 순간 아 이제 나는 죽었다. 도우려고 왔다가 일만 크게 만들고 가는 셈이다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분이 그쪽 부분이 약한 걸 알기는 했어도 그렇게 순식간에 넘어질 줄이야. 나는 목이 타고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모르고 죄송하다고만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분께서는 여러 번 넘어진 경험이 있었는지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말씀을 해주시는 거다. 그 분은 아유. 아야. 아이고. 하느님 등 계속 되뇌는데 나는 계속 죄송하다고 밖에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옆집 몇 호가서 아주머니를 불러 도와 달라고 하면 와 주실 거라고 하셔서 그리 하는데 어떻게 거기까지 갔다 왔는지 모르겠다. 아주머니가 마침 계셔서 같이 일으켜 세운 뒤 겨우 소변기 위에 앉혀 드리고 난 뒤 의자에 자리를 잡고 그 분의 머리를 만져 보니 피는 나지 않았지만 많이 부어 있었다. 나는 냉동실 얼음으로 주머니를 만들어 부은 부분을 문지르고 다른 부분은 괜찮으신지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뼈에 이상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또 부은 부분도 시간이 지나니 감쪽같이 가라앉았다. 시간이 많이 흘러 모두가 진정이 되니까 그 분은 나한테 “악의 없는 마음이면 괜찮아” 하시면서 오히려 나한테 시간이 늦었으니 가라고 하신다. 집으로 돌아 오는 차 안에서 걱정이 태산 같았다. 괜히 일을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또 너무 큰 실수를 해서 내 마음은 답답하기만 했다. 집에 와 시간이 흐른 후 나를 살펴보니, 나 역시 머리에 혹이 있고 옆구리 팔 다리 오른쪽이 조금씩 아파 오기 시작했다. 그 다음날은 더 아파왔다. 그날 그 댁을 방문했는데 그 분께서 어디 아픈 데가 없느냐고 하신다. 그때 그 분을 보니 눈 밑과 얼굴 반쪽이 거의 피멍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정말 죄송합니다” 하고 말씀드리는데도 그분도 또 그분 따님께서도 괜찮다고 하신다. 그 분들은 오히려 나를 걱정해 주셨다. 그 분의 피멍은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없어졌다. 그 이후로 그 분의 손발이 되는 방법을 하나하나 혼자 터득을 해 나갔다. 의자에서 변기로, 변기에서 의자로, 휠체어로 처음에는 안았다가 그 다음은 허리를 잡았다가 발을 밟았다가 팔을 잡았다가 몇 가지 방법을 해보고 나니 그 분이 편안해 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얼마나 조심스럽게 했는지 그 댁만 일하고 오면 등에 땀이 나고 허리 팔이 너무 너무 아파왔다. 집에 와서는 속으로만 끙끙 거렸다. 그 후 부터는 긴장을 하면서 살얼음처럼 조심조심해서 그 분의 손발이 되도록 했다. 차츰 차츰 일에 익숙해지면서 그 분께서도 오히려 고마워하시고 “언제 오지?” 하고 내가 갈 날짜를 기다려 주시는 것이다. 어느 날인가 그 분이 평소에 바깥 구경을 못하시니까 너무 지겨워하는 것 같아 휠체어에 태우고는 가끔 알뜰장 구경. 나무가 변해가는 가을 풍경, 아파트 문을 넘어 같이 다녔더니 하시는 말씀이 바깥 세상을 몇 달 만에 구경하신다고 정말 너무 너무 좋아하시는 것이다. 늦가을 쯤인가 감나무에서 홍시를 따서(손을 못 쓰시니까) 먹여 드리고 입 주위도 닦아 드리고 감도 꺾어서 집으로 가져다 드렸었다. 그 분 방문하는 날 일을 마치고 집을 나오기 전에는 소변과 기타 볼 일-먹을 것, 형광등, TV 리모컨 등을 준비해 놓고 오곤 한다. 그렇게 한동안이 흘렀다. 그 분이 사정상 병원으로 입원을 하시게 되어 병원으로 출근을 하면서 같이 가면, 의사 선생님이나 간호사 선생님들이 “따님 이예요?” 라고 물으면 그 분이 그렇다 하고 대답할 정도로 남들에게도 가깝게 보인 것 같았다. 그 전에는 중풍으로 알았던 병이 루게릭병으로 판정이 났다고 한다. 그 병은 쉽게 낫는 병이 아니라고 한다. 병의 원인도 모르고 별 약이 없다고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매우 씁쓸하였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차도가 있어 회복하시고 빨리 쾌유를 하시기를 마음 속 깊이 빌어 본다. 정말 열심히 도와 드렸고 그 분 역시 그렇게 생각하시리라 믿고 또 처음 갔을 때 실수 했던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둘이서 자주 웃곤 하던 생각이 가끔 나고 한다. "나 죽었다"라고 하던 순간을 지금도 나는 가끔 떠올리면서 다른 댁에서 가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그 분들의 신경을 거슬리지나 않을 까 편안해 하시는지 조심조심 행동을 하고 있고 어떻게 해달라고 하시는지 잘 묻고 내일처럼 잘 해드리려고 한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이야기하시길 좋아 한다. 하시는 말씀만 경청해 드려도 너무 좋아하시고 말을 하고 나면 속이 후련하다고 하시면서 결정적인 문제도 많이 의논을 해 주시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내 마음을 가볍게 하고 도우미 생활 11개월째를 맞는 보훈 도우미로서의 보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수혜자님들의 건강과 정신적 안정, 갈등 해소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고, 그 분들이 만족하게 하고픈 오직 한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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