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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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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 수원]이경춘 생존애국지사 생신 축하
부서 보훈과

  수원보훈지청(지청장 김영식)에서는 2007.3.21.(수)에 우리고장 생존 애국지사인 이경춘 지사를 방문하여 83번째 맞는 생신을 축하드리고 국가보훈처장 명의의 꽃바구니와 케이크 및 위문품을 전달하며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한 지사님의 건강을 기원하였다.

  이경춘 지사님은 서울 출신으로 경성사범학교에 재학중 이현상(李賢相) 등 경복중학교 출신 학생들이 주도하여 1941년에 조직한 항일학생결사인 흑백당(黑白黨)의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흑백당이 결성되기 전인 1939년부터 이현상 등과 동지적 결합을 맺고 조국 광복을 위해 친일파 및 일본인 고관을 처단하기로 결의하고 활약하였다. 그 후 목적완수를 위해 계획을 진행하였는데, 1941년에 이들이 각각 전문학교에 진학한 후 동년 가을 당시 봉래동(현재 만리동) 소재 주낙원(朱樂元)의 집에 모여 정식으로 흑백당을 결성하고, 선언문·강령·규약 등을 정하였다. 이때 그는 동결사의 중앙집행위원의 일을 맡았다.

  이들은 실천행동방략으로써 친일파 처단 명부를 작성하는 한편 일인이 밀집하여 살고 있는 당시 욱정(旭町)(현재 남산동 부근)일대를 방화하여 일인을 섬멸하는 계획을 세웠다. 또한 일제의 패망과 조국광복이 가까왔음을 알리는 격문을 각처에 뿌려 민족의 각성을 촉구하는 한편 특공대를 조직하여 경복중학교 무기고에서 교련용 38식 소총 2자루와 실탄 및 총검을 빼냈다고 한다.

그런데 흑백당의 동조자였던 보성전문학교학생 김창흠(金昌欽)이 귀향도중 열차 안에서 우리말로 일제를 욕하다가 1943 10월에 일경에 피체되었고, 이때 가택수색과정에서 흑백당에 관한 문서가 발각됨으로써 동결사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에 국내활동이 어려워지게 되었으므로 당원들은 긴급모임을 갖고 중국으로 건너가 광복군에 투신하기로 결정하고, 일단 당원 김성근(金盛根)의 자형이 있는 만주의 신민(新民)에서 집결하기로 하고 1943 12월초부터 12명씩 조를 나누어 떠났다. 그런데 이 사실을 탐지한 일경의 추격에 의해 동 당원들은 1944 1월경 만주의 북경·심양(瀋陽)·신민(新民)·승덕(承德) 등지에서 피체되었다. 그도 일경에 피체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44 12월 대전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45 8·15광복으로 출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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