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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북부보훈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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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석오 이동녕 선생 67주기 추모식
부서 보훈과
◈ 13일(화) 오후 2시 효창공원 묘전에서 ◈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의장·국무총리·주석 등을 역임하며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하신「석오 이동녕선생 67주기 추모식」이 13일(화) 오후 2시 효창공원 묘전에서 석오이동녕선생기념사업회(회장대행 이석희) 주관으로 열린다.
  이날 추모식은 박유철 국가보훈처장, 광복회장, 유족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박한용 원로목사의 추모기도, 오성식 기념사업회 이사의 약사보고, 이석희 기념사업회 회장대행·국가보훈처장의 추모사, 김국주 광복회장의 추념사, 헌화·분향, 유족대표 예사 순으로 진행된다.
  이동녕 선생(1869.2.1~1940.3.13)은 충남 천원(현 천안시)에서 출생하여 1896년 28세 때 독립협회에 가담하는 등 개화민권운동에 투신, 구국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독립협회 주관으로 만민공동회가 열렸을 때 나라의 잘못된 정치를 탄핵하고 임금께 상소하는 등 국민운동 일선에 나섰다가 투옥되어 7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또한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동지들과 함께 결사대를 조직하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연좌시위를 벌이며 을사늑결의 무효와 파기를 선언하다 체포되어 2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1906년 북간도 용정촌으로 망명하여 이상설, 이준 등과 함께 서전서숙을 설립하여 민족교육에 헌신하였고, 1910년 이석영, 이철영, 이회영 등과 함께 한국인 자치기관인 경학사(耕學社)를 설립 운영하여 서간도 이주민들의 신분보장과 독립정신 고취에 앞장섰으며, 훗날 광복군의 초석이 된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설립하여 초대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1919. 2. 1 길림성에서 대종교 김교헌 외에 조소앙, 조완구, 김좌진, 여준 등 국내외 민족지도자 39인과 대한독립선언서를 내외에 선포함으로써 3·1독립만세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던 해인 1919년부터 임시의정원 의장, 내무총장, 군무총장, 국무총리, 국무령, 주석 등으로 임시정부를 이끌며 반평생을 해외에서 조국광복의 일념으로 일제에 투쟁하였으나, 1940년 3월 13일 72세를 일기로 사천성 기강 임시정부 청사에서 영면하였고, 1948년 9월 유해가 환국하여 효창원에 안장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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