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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동부보훈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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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그땐 목숨걸고 태극기 만들었지 - 항일독립투쟁 안일,한칠석 애국지사
부서 보훈과
"요즘은 광복절이라고 해도 태극기 게양도 잘 안하는 것 같아. 갈수록 젊은이들의 애국심이 희박해지는 것이 안타까워…." (한칠석).
"뭐 할말 있나. 모두 나라를 되찾기 위해 한 일이었지. 지금은 국가가 보살펴줘 이렇게라도 살 수 있다는 게 고마울 뿐이지…." (안일).
광복 62돌을 앞둔 13일 안일씨(82·진안읍 군상리)와 한칠석씨(84·전주시 호성동)는 이 같은 소감을 밝히고, 젊은 시절 치열했던 항일운동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이들은 이희동씨(81)와 함께 현재 도내에 거주하고 있는 항일독립투쟁 마지막 애국지사들로서 해방 즈음인 1944년께 비밀 독서회를 결성, 우리말 사용과 태극기 보급에 앞장서온 인물이다.
안씨와 한씨는 나란히 전주사범학교에 재학 중이던 1944년 백진우 의사(현재 서울 거주) 등과 함께 비밀 독서회에서 활동했지만 이듬해 2월 일본 헌병대에 끌려가 전주형무소에서 6개월간 옥고를 치른 뒤 해방을 맞아 풀려났다. 당시 이들은 비밀 독서회에서 태극기를 제작하고 애국가를 인쇄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안씨는 광복을 앞둔 1945년 2월 5일 새벽 5시 밤새워 한씨의 하숙집에서 몰래 태극기를 만들던 중 서슬퍼런 닛본도를 든 일본인 헌병들이 들이닥쳐 감옥으로 끌려갔다.
그는 "전주사범학교에 일본인 교사들이 득실거리는 상황에서 비밀리에 독서회 활동을 한다는 게 여간 간이 크지 않고서는 엄두를 못내던 시기였다"며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한씨 역시 “내 하숙집이 바로 아지트였어. 독립운동을 한다는 학생들은 죄다 모였거든. 몰래 우리말 쓰기 운동을 벌이고, 태극기를 만드는 등 그야말로 ‘목숨을 건 활동’을 벌였다”고 회상했다.
이처럼 이들이 비밀 독서회 활동에 나서게 된 것은 상해임시정부 요원을 만났기 때문. "이름도 모르는 분이었는데 태극기 그리는 법이나 우리말 사용 운동에 대한 민족정신을 일깨워줬다"고 밝혔다.
“8월 14일 밤 전주형무소에서 키다리 같은 간수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전하더라고. 조선독립투쟁을 하는 모든 사상범들을 열흘 안에 모두 처형하라는 지령이었어. 일본이 항복을 조금만 늦췄더라면 아마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게야."
이들은 해방 며칠 전 처형당할 위기에 처했지만, 광복으로 인해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면서 가까스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며 당시 아찔했던 순간을 한평생 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 두 지사의 이같은 애국 행적은 1980년 초에 우연히 언론에 보도된 이후에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안씨는 KBS 생방송에 출연해 광복 전날 전주형무소 상황을 전했던 장면이 보도되면서 보훈처 도움을 받아 비로소 유공자로 인정받았고 뒤이어 한씨도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들은 "어려운 시기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이들 모두가 건강하게 지냈으면 한다”며 “국가도 더욱 발전하고 남북이 힘을 합쳐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는 일이 없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 새전북신문 8월 16일자 인터뷰 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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