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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서부보훈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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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주년 국채보상운동 기념일을 맞이하며
부서 보훈팀
우리 민족의 전통 명절인 정월대보름 날이기도 한 21일은 암울했던 일제강점시절에 우리 민족과 대구지역민들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민간주도의 주권수호운동이었던 "국채보상운동"이 일어 난지 101주년이 되는 기념일이다.
국채보상운동은 담배를 끊어 외채를 갚자던 운동으로 1907년 1월 29일 대구 광문사에서 김광제, 서상돈 등이 발기해 같은 해 2월 21일 대구 북문 밖 북후정(현재 대구시민회관)에서 군민대회를 개최했다. 이를 통해 본격적인 국채보상운동의 불을 지피면서 전국 각지와 국외로 그 불길이 번져나가 소시민에서부터 고종 황제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참여한 전 국민적인 운동으로 발전했다.
오늘 날에는 북후정에서 대구군민대회가 열렸던 21일을 국채보상운동 기념일로 정하고 당시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국채보상운동은 구한말 일본이 한국을 경제 식민지화하는 계략을 진행한 데서 비롯됐다.
경술국치(1910년) 3년 전인 당시 일본은 러∙일 전쟁의 승리와 을사5조약 등을 통해 한국에서 정치∙군사적 지배권을 이미 확보했다. 일본은 한국경제를 식민지화하기 위해 차관을 강요했고, 식민지 건설비용을 모두 한국정부에 전가시켰다.
1905년부터 시작된 한국의 대일본 부채는 1907년에는 1천300만원에 달해 당시 세입이 1천320여만 원에 불과했던 국가가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수준이었다. 이에 대구∙경북지역의 선각자들은 국가 존망의 위기의식을 느끼고 국권 회복을 위해선 먼저 국가채무부터 갚아야 한다는 데 뜻을 모은 것이었다.
오로지 조국을 수호하기 위한 국민의 피와 눈물이 섞인 국권 회복운동이었던 국채보상운동은 비록 일제의 조직적인 방해로 실패로 끝났지만 뒷날 3.1운동과 물산장려운동 등 항일운동의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7년 IMF사태 이후 금 모으기 운동에 이르기까지 그 정신이 이어져 온 감동적인 국민운동이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볼 때 어려운 경제난과 구직난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득한 현재의 상황도 국채보상운동의 정신과 IMF 당시 금 모으기 정신을 이어 받는다면 능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어본다.
우리는 오는 25일 새로운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있다. 다시 시작하는 출발선에서 오늘의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101년 전 우리 선조들이 나라 빚 청산으로 자주독립 국가를 수호하고자 전 국민이 단합했던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되살려 서로 한걸음 양보하고 한 뜻으로 화합해 더욱 발전한 선진 한국의 미래를 열어 나가야 할 것이다.
임준빈(대구지방보훈청 보훈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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