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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북부보훈지청

지(방)청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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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 ▶ 현충시설 기획보도-1
부서 보훈과
   서울남부보훈지청(지청장 류찬수)은 관내 6개구(강남ㆍ서초ㆍ동작ㆍ관악ㆍ구로ㆍ금천)에 있는 현충시설을 널리 홍보하여 국민에게 친근감을 줄 수 있는 장소로 자리매김 시키고 국민의 호국·보훈의식 제고를 위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함으로써 국민의 나라사랑 정신을 함양하고자 현충시설 기획 홍보를 실시하고 있다.
 
  ▣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     
  1932년 4월 29일 상해 의거를 통해 침체에 빠졌던 독립운동사의 일대 전기를 마련한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의사의 높은 뜻을 기리고, 계승 발전시키며, 선양하기 위하여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가 주관하여 국민들의 성금으로 서울시 서초구 양재 시민의 숲 안에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을 설립하게 되었다.
  윤봉길 의사는 1908년 6월 21일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량리에서 파평윤씨의 부친 윤황(尹士黃)공과 경주김씨 모친 김원상(金元祥)여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덕산보통학교를 자퇴한 뒤 오치서숙에서 수학하고, 19세때인 1926년부터 고향에 야학을 세워 농촌계몽운동을 시작했으며, 20세때에는 각곡독서회를 조직하고 농민독본을 편찬했으며 22세 때에는 월진회(月進會)와 수암체육회를 조직하여 농촌운동 민족운동을 더욱 정열적으로 전개 하였다.
  윤봉길 의사는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이 어려워지자 23세 때인 1930년 3월6일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 生不還)] 이라는 글을 써놓고 중국으로 망명하여, 청도를 거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에 도착하였다.
  일본군이 1932년 1월 28일 상해를 침공하여 점령한 후, 4월 29일 천장절 겸 상해 점령 전승경축 기념식을 홍구 공원에서 거행하게 되어 상해점령 일본군 군 정 수뇌들이 여기에 모이게 되자, 윤의사는 백범 김구 선생이 지휘하는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여 이에 특공작전을 감행할 것을 자원하였다.
  윤의사는 단신으로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상해점령 일본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등 군 정 수뇌들 7명에게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의 전의를 상실케 하는데 성공하였다.
  윤의사는 현장에서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5월25일 현지의 군법재판 단심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11월에 일본으로 이송되어 그해 12월19일 25세를 일기로 순국하였다.
  1988년 12월 1일에 준공된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은 대지 1,996평에 건평 743평,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서 윤의사의 유품과 생애사진,훈장 그리고 항일독립운동 관련사진 등이 전시되고 있다.
  매헌 기념관 안에는 기념관, 천추의열 윤봉길 의사 숭모비와 매헌 윤봉길 의사 동상이 현충시설로 지정되어 있다.
  ▣ 천추의열 윤봉길 의사 숭모비
  이 숭모비는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홍구 공원에서 열린 일본의 전승기념식장에서 폭탄을 던져 상해 일본군 총사령관 등 군수뇌 7명을 사상케 하여 일본군에 타격을 주어 전의를 상실케 하였으며 우리 민족의 독립정신과 독립운동을 전세계에 널리 알리는 성과를 올린 매헌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널리 알리고 그의 나라사랑과 인류의 자유, 평등, 평화를 사랑하는 그의 정신을 길이 전하기 위하여 상해의거 제 61주년을 맞아 세웠다.
  ▣ 매헌 윤봉길 의사 동상
  1992년 4월29일에는 상해의거 제6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청동으로 된 높이 9.2m,윤봉길의사 동상이 건립되었고, 제61주년 기념사업으로 1996년 4월8일에는 윤의사가 사랑한 겨레와 인류의 자유, 평등, 평화를 위하여 오늘도 내일도 님의 뜻을 현창(顯彰)하고 숭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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