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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동부보훈지청

지(방)청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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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우리지역의 독립운동가 소개 - 박준승 선생
부서 보훈과
◎ 박준승 선생(1863.11.24~1927.3.24)
   - 1912.     천도교 전라도 순유위원장
   - 1919.3.1  민족대표 33인중 1명, 독립선언식 참석
   - 1920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선고
   - 1962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조선은 4천년전에 건국하였으며 나도 날 때는 독립국 국민이었다. 그런데 일본에 병합되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독립할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구주(歐洲)에서 국제연맹회의를 하고 있는 고(故)로 이 좋은 기회에 독립하지 아니하면 안될 줄로 생각한다.
- 선생의 공판기록 중 진술내용 -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전라북도 임실(任實) 출신이며, 천도교(天道敎)인이다. 1891년(고종 29)에 천도교에 입교하여 1897년(광무 1)에 접주(接主)가 되고, 1908년(융희 2)에 수접주(首接主), 1912년에 전남 장성군 천도교 대교구장 겸 전라도 순유위원장(巡諭委員長)을 역임하였다.
  1919년 2월경에 손병희(孫秉熙)로부터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고, 수교도(首敎徒) 유태홍(柳泰洪)·박영창(朴永昌)·김의규(金衣圭)에게 독립선언서 5천매를 배부하여 장성(長城)·임실 등지에서 궐기하게 하였다.
  그는 2월 25일부터 27일경까지 천도교 기도회 종료보고와 국장참배를 위해 상경했다가 손병희·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과 만나 3·1독립운동에 관한 설명을 듣고 이에 찬동하여 민족대표로서 서명할 것을 승낙하였다.
  2월 27일 최 린(崔麟)·오세창·임예환(林禮煥)·권병덕(權秉悳)·나인협(羅仁協)·홍기조(洪基兆)·김완규(金完圭)·나용환(羅龍煥)·홍병기(洪秉箕)·양한묵(梁漢默) 등의 동지들과 함께 김상규(金相奎)의 집에 모여서 독립선언서와 기타 문서의 초안을 검토하였으며, 이들과 함께 민족대표로서 성명하였다. 28일에는 재동(齋洞) 손병희의 집에서 다른 민족대표들과 만나 이튿날 거행될 독립선언에 따른 최종 검토를 하였다.
  그는 3월 1일 오후 2시경 민족대표로 손병희 등과 함께 인사동(仁寺洞)의 태화관(泰華館)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회람하고 만세삼창을 외친 뒤, 일본경찰에 의하여 체포되어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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