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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보훈청

지(방)청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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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보훈도우미 활동 1년을 돌아보며
부서 지도과
보훈도우미 활동 1년을 돌아보며 보훈도우미 하 임 순 월남전 참전이후 고엽제등 많은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남편이 2004년 여름 갑작스레 암이란 진단까지 받게 되었다.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란 걸 뼈저리게 느끼던 때였다. 남편은 빠른 검사와 수술로 어려운 고비는 넘겼지만 힘들어하는 남편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맘에 학원에서 전신마사지와 발 마사지를 배우게 되었다. 그때 남부보훈지청에서 보훈 도우미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처럼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나의 작은 힘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보훈 도우미에 지원하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보훈처 도우미로 들어온 지 어느새 1년이란 세월과 시간이 흘렀다. 처음 도우미라는 자리에 발령 받고 이틀이란 나에겐 짧았던 교육 끝에 일곱 분의 대상자 가정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의 불안, 초조, 두려움 이란 지금도 말로 설명 할 수 없다. 보훈가족 자녀조차도 만지기를 꺼려하는 환자들을 내가 보살펴야 한다는 부담감. 그에 따르는 두려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심적인 부담이 있었는지 모른다. 처음엔 대소변 받아내기, 목욕시키기, 가사일, 움직이지도, 기억도 못하는 환자를 간호하기란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환자들을 보며 너무나 안타까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제는 도우미로써 어느 정도 눈빛만 봐도 그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피부로 와 닿게 되었다. 대부분이 몸이 불편하시니까 만져주기를 원하시고 가사일 또한 도와 드리길 원하신다. 무엇보다 말벗이 되어주길 가장 원하는 것 같다. 그것이 그분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봉사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2006년 4월부터 노후복지사업이 서울청/남부지청/북부지청으로 나누어지면서 가정방문 하는 집이 다소 변경됐다. 처음 만난 대상자와 어느새 정이 들어 헤어진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새로운 보훈 가족들이 나의 도움의 손길을 기다린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뒤로한 채 새로운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나와 만나고부터 대부분 대상자의 건강이 많이 개선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것 같다고 한다. 또한 힘든 일도 편해졌다고 하신다. 그래서 나 역시 나의 일에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그 동안 간병하면서 환자가 갑자기 몸이 좋지 않아 129를 불러 보훈병원 가곤 할 때면 내 마음이 조마조마 해지곤 한다. 그래도 아직까진 대상자 분들 모두가 큰 탈 없이 잘 계셔 보람도 느낀다. 이 세상은 혼자 살기에는 너무 힘들다. 더불어 살아야 하며, 좀더 노력해서 보훈가족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도움이 됐음 한다. 늘 감사하게 생각하며, 때로는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기기도 하지만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다는 자체가 만족스럽다. 주위에 불편한 분도 조금씩 도와가며 오늘도 도우미 봉사활동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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