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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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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송재 서재필 박사 56주기 추모식
부서 보훈과
독립신문 창간, 독립협회 창립 등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송재 서재필박사 56주기 추모식이 1월 5일(금) 오후 1시 30분에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서 류찬수 서울남부보훈지청장, 유재건 열린우리당 의원, 김우전 전 광복회장, 이택휘 한양대학교 석좌교수, 재단임원 등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재단법인 서재필 기념회(이사장 백낙환)주관으로 열렸다.
  서재필 박사(1863.11.18~1951.1.5)는 전남 보성에서 출생하여 14세에 전시(殿試)에서 장원급제하였으며, 당대 개화사상의 거두인 김옥균 등과 함께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청국의 개입으로 갑신정변이 3일 만에 실패하자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여 1889년 조지워싱턴대학 의학부를 졸업하였으며, 1894년 갑오경장 추진내각에 의해 사면령이 내려지자 1895년 12월 16일 귀국하였다.
  1896년 독립신문을 창간하여 국민계몽운동을 전개하고 독립협회를 창립하여 독립문을 세우는 등 독립과 개혁에 대한 국민의 자주독립 사상과 자유인권 사상을 고취하였으며, 1919년 구미위원부 위원장으로 상해임시정부 외교고문, 1925년 미국 하와이에서 개최된 “범 태평양 회의” 한국대표로 참가하여 일본의 한국침략의 부당성을 폭로하고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는 등 일평생을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하였다.
  광복 후 일시 귀국하여 과도정부의 특별의정관에 선임되기도 하였으며, 6·25전쟁 발발 후 조국의 불운한 명운을 통탄하다 1951년 86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서재필 박사의 공적을 기리어 1977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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