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울북부보훈지청

지(방)청소개

국가보훈부(국문) - 우리청소식(서울남부보훈지청) 상세보기 - 제목, 부서, 내용, 파일, URL 정보 제공
(남부)애국지사 생신축하 위문 -구호림지사
부서 보훈과
서울남부보훈지청(지청장 류찬수)은 2007.11.06.(화) 88세 생신을 맞이하신 생존애국지사 구호림 지사님을 방문하여 국가보훈처장관명의 축하 난을 전달하면서 생신을 축하드리고 지사님의 건강을 기원하였다.
 
 구호림 지사님은 전북 옥구(沃溝) 사람으로 1933년 3월 대야공립보통학교(大野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동년 4월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京城第一公立高等普通學校, 京畿高等學校의 前身)에 입학하여 1938년 3월 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도항하여 1940년 동경(東京) 중앙대학(中央大學) 법학부에 입학, 1942년 졸업하였다.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당시부터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시작한 그는 동경 중앙대학에 진학하자, 조선이 비참한 상태를 벗어나는 길은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1940년 6월 하순경 고담룡(高湛龍)·김운봉(金雲鳳) 등과 회합하여 조선독립운동의 방법으로 한민족의 단결심 양성, 자력 함양, 미국을 통한 독립운동 도모 등을 전개하기 위해 고문(高文)그룹을 조직하였다. 고문그룹은 표면적으로 학술연구와 상호 친목단체로 위장하여 일본의 감시를 피하면서 동지의 결속을 공고히 하기 위한 방법으로 결사를 유지하였다. 이들은 조선독립의 방법으로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주의를 기본적으로 채택하되, 독립을 위한 투쟁을 협의하였다. 또한 1940년 10월 말경 구호림 등은 일본정책에 편승하여 실력을 양성하며 자력(自力) 본위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매진할 것과 독립 후 통치체제는 히틀러의 나치주의를 모방할 것을 협의하였다.
그후 1940년 11월 이들은 모임을 갖고 기념촬영을 하면서 졸업후 관계 혹은 재계로 진출하여 평생 독립을 목표로 헌신할 것을 협의하는 등 1940년 6월부터 1942년 5월까지 약 11회에 걸쳐 독립쟁취 방법을 논의하다가 일경에 피체되어 소위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등 임시취체법(臨時取締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파일
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