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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남부보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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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우남 이승만박사 42주기 추도식
부서 보훈과
  ◈ 19일(목) 오후 2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
  ◈ 각계인사, 광복회원, 기념사업회원 등 300여명 참석 ◈
  일제에 침탈된 국권회복을 위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하시고 광복 후에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건국에 기여하신 「우남 이승만박사 42주기 추도식」이 19일(목) 오후 2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사)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회장 이홍구) 주관으로 열렸다.
  이날 추도식은 김정복 국가보훈처장, 강영훈 前 총리, 장경순·이철승 現前 대한민국헌정회장, 정창영 연세대학교 총장, 광복회원, 기념사업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홍구 기념사업회장의 개회사, 국민의례, 찬송, 기도, 성경봉독, 특별찬송, 육성녹음, 국가보훈처장의 추도사, 헌화·분향, 이인수 박사의 유족인사, 찬송, 축도 순으로 진행되었다.
  추도식에 이어서 “독립·건국·호국을 위한 이승만 외교”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개최하여 평택대학교 김남균 교수 등의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우남 이승만 박사(1875.3.26~1965.7.19)는 황해도 평산(平山)에서 출생하였으며, 1896년 서울에서 협성회보(協成會報)라는 주간신문을 발간하고 주필이 되어 정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전개하였다.
  1904년 11월 미국으로 건너간 박사는 1905년부터 1910년까지 워싱턴 대학, 하버드 대학, 프린스턴 대학 등을 순례하면서 새로운 문물과 새로운 학문을 접한 뒤 귀국하였고, 1912년 미국에서 열린 세계감리교총회 한국대표로 참가한 뒤 1914년 하와이에서 「한국·태평양」신문을 발간하고, 박용만·안창호와 협력하여 독립운동에 전념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난 후 그해 4월에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대통령으로 추대되었으며, 1921년 5월에는 워싱턴 군축회의, 1933년에는 제네바 국제연맹회의에 참석하여 일본의 침략성을 폭로하였다.
  1940년 12월 8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 구미위원장이던 박사는 국민들의 단결을 호소하는 육성방송으로 희망과 용기를 북돋우고, 일본이 패망하자 1945년 10월 16일 귀국하여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정부에서는 우남 이승만박사의 공적을 기리어 1949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서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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