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애국지사 김마리아 선생 | |
부서 | 보훈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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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매 공원에는 애국지사 김마리아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이는 현충시설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김마리아 선생은 20세기 초엽의 여성지도자요, 교육자요, 애국지사이며 돈독한 기독교 신자이다. 1892년 6월 18일 황해도 소래마을에서 태어났다. 기독교 학교(소래학교와 정신여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자라면서 철저한 애국애족 정신을 갈고 닦아 한평생 광복 운동을 하였다. 그 뒤 광주 수피아 여학교와 모교에서 교사를 지냈다. 1914년 일본 히로시마[廣島]의 긴조 여학교[錦城女學校]와 히로시마 여학교에서 수학한 뒤, 1915년 도쿄 여자학원[東京女子學院] 예비과에 입학했다. 1918년 말경 동경유학생 독립단에 가담했으며, 1919년 2·8독립운동에 참가했다. 2·8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귀국하여 각지를 돌아다니며 독립사상을 고취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5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석방 후 모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기존의 애국부인회를 바탕으로 9월에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하고 회장에 추대되었다. 임시정부 군자금 지원에 힘쓰던 중 11월 오현주(吳玄洲)의 배신으로 비밀조직이 탄로나, 3년 형 선고를 받고 재수감 되었다.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사경에 처하자, 스코필드 박사의 주선으로 병 보석을 받고 가료 중 동지들의 도움을 얻어 중국 상하이로 망명, 임시정부 황해도 대의원, 국민대표회 대표 등으로 활동하다가 1923년 7월 미국으로 재 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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