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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청소식

지(방)청소개

국가보훈부(국문) - 우리청소식(서울북부보훈지청) 상세보기 - 제목, 부서, 내용, 파일, URL 정보 제공
(북부)우리지역 현충시설물 바로알기
부서 보훈계
- 서울북부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현충시설물 소개<1>- 서울북부보훈지청(지청장 정종기)에서는 우리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국가보훈처지정 현충시설물을 내고장 주민들에게 알림으로써 생활주변에서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자나라는 청소년의 호국·안보의식 고취 및 지역민의 애국심 함양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항일의병13도 창의군탑” 항일의병13도 창의군탑(十三道倡義軍)(중랑구 망우동 산 57-3)은 면적 15.17㎡(4.6평), 높이 15m의 규모로 1907년 11월 동대문 밖 30리에 해당되는 망우리 일대에서 48진 1만여명에 이르는 의병이 13도 창의대군소를 설립하고 총대장에 이인영, 군사장에 허위를 추대하여 서울로 진격한 기념 및 항일의병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1년 7월31일 동아일보사에서 기념탑을 망우리 공원 입구에 건립하였다. “13도 창의군”이란 1907년 12월 국권회복을 위해 양주(楊州)를 거점으로 하여 조직된 항일 의병부대이다. 강제 군대해산을 계기로 의병활동이 활발히 재개된 이후, 원주(原州) 지방에서 일어난 이은찬(李殷瓚) 등의 추대로 관동창의대장에 오른 이인영(李麟榮)은 의병의 소모(召募)와 의병규합에 진력, 의병부대에 격문을 발송하고 11월 양주에 집결하도록 하였는데 이에 각지에서 많은 의병부대가 호응하여 전국연합부대 결성을 보게 되었고, 이인영을 13도의병 총대장으로 추대함과 동시에 그 배하에 9개의 창의부대를 두었다. 총병력은 1만 명에 이르렀고 이 가운데는 해산을 당한 군인 3000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11월부터 서울진공작전을 개시하여 경기 일대에서 활동, 동대문 밖 30리 지점까지 진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듬해 1월 총대장 이인영이 부친상(父親喪)을 당하여 거상(居喪)하게 됨으로써 구심점을 잃은 창의군은 각지 의병부대와의 연계가 끊어지고, 더욱이 각처로부터 올라오는 의병부대가 일본군에게 격파당함으로써, 결국 연합의병의 서울진공작전은 실패로 돌아갔으며, 그 뒤 13도창의군은 완전해산하여 각기 연고지로 돌아가 독자적인 의병활동을 하였다. 비록 서울을 탈환하지는 못하였으나 서울탈환은 모든 의병부대의 궁극적인 목적이었고 이때 실제로 의병연합부대를 조직하여 전투를 감행한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인근에 있는 망우동 공원묘지에는 우리나라 어린이 운동의 효시인 방정환, 독립운동가이며 민족대표 33인중 한 분인 오세창, 한용운, 우두보급의 선구자로 의학자이며 국어학자인 지석영, 임시정부 내무부서기를 역임한 독립운동가 문명훤, 동아일보 주필과 한국민주당 창당을 주도했던 장덕수, 제헌국회의원이며 진보당 당수였던 조봉암 등의 묘소가 있어 함께 찾아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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