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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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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춘천) 해외의병 유적탐방 답사기(8)
부서 보훈과
넷째 날(Ⅱ) 2006.10.25(수) 아침 흐림. 낮에 가랑비, 저녁은 흐림. 이진룡 장군의 의열비를 탐방하다 11:00 관전현 청산구 은광자촌 부근에 있다는 기천(己千) 이진룡(李鎭龍)의 의열비(義烈碑)와 그의 부인 우씨(禹氏)의 열녀비(烈女碑)를 찾아 나섰다. 비석들은 은광자촌을 지나 외로이 사이좋게 산언덕위에 사이좋게 서있었는데 어렵게 찾아냈다. 현지인들에게 이진룡 의열비를 물어보니 모른다해서 빨리 달리는 사람의 비석을 물어보니 알려주었던 것이다. 이름은 잊었지만 이진룡 장군의 용맹성은 지금도 마을 사람들에게 전설처럼 남아 있는 것이다. 마을사람들은 그곳을 구대구라고 부르는데 한글로는 자루꼴이라는 뜻이다. 비석들은 돌보는 사람이없는 듯 바위아래 풀 속에 버려진 듯 숨어 있는 듯 방치되어 있었다. 엄찬호 교수와 허준구 교수가 이진룡장군과 우씨부인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두 비석은 원래 있던 곳에서 호수에 물이차오르자 언덕 윗부분으로 옮겨진 것이라 하는데. 무심하게 오가는 사람들과 차를 보며, 도로 아래로 무정하게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맞은 편 산에 봄·여름·가을·겨울 계절들이 새처럼 앉았다 날아가는 것을 보며, 후손들을 기다리고 조국을 한없이 그리워 하였으리라. 너무 늦게 찾아온 것을 후회하고 죄송해 하며, 그리고 두분의 애국충절을 가슴깊이 감사해 하였다. 탐사대원들 모두 묵념을 하며 이떻게 하면 두분의 뜻을 이어받아 발전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는 것이 두분의 뜻을 현재에 올바르게 계승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이진룡(1879-1918)은 몰락한 율미가문의 출신으로 1879년 황해도 평산군 신암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소년시절 고향에서 경서를 공부하였으며, 특히 의암 유인석의 문인이 되어 항일 구국정신을 배양하였다. 그후 유인석의 문인 우병열의 사위가 외었고 유인석의 문인으로 의병항쟁에 참가하게 되었다. 특히 1907년 말 일제와의 전투 수행중 유격부대장 유달수가 전사하자 중대장 혹은 유격대장으로 일본군과의 교전을 주도하였으며, 이후 평산 의병부대의 부대장으로 추대되었다. 1908년 의암 유인석이 연해주로 망명을 단행하자 유인석을 따라 연해주로 이동하였으며, 그해 겨울 연해주에서 귀국한 이진룡은 다시 평산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계속적인 항쟁을 주도하였다. 1909년 가을 일제의 이른바 남한 대토벌이 전개되자 1911년 10월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7년 5월25일 서간도 관전현에서 밀정의 밀고로 체포되었으며, 1918년 5월 1일 평양감옥에서 순국하였다. 그는 구금중에도 그의 직업을 묻는 일제에게 “왜적을 토벌하고 나라를 구하는 것이 업이다”라고 하며 그 기개를 떨쳤고, 교수대 위에서도 유연한 웃음으로 순국을 맞이 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이진룡의 부인 우씨는 집앞의 소나무에 목을 매 순절하였다. 이진룡이 평양감옥에서 순국하자 1919년 3월 관전현 청산구 이웃 중국인 주민들이 의(義)를 숭상하고 절(節)을 지키는 선생과 우부인의 천고에 드문 충절에 감복하여 의열비를 세웠다. 이진룡의 비석은 가로 37, 높이 96, 두께 16cm이다. 그리고 우씨부인의 비는 가로 37, 높이 95, 두께 14cm이며, 화강암으로 되어있다. 의열비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있다. 조선의사 이진룡은 열부 우씨와 민족을 택하였노라 남편은 나라를 위해 죽었으니 문산(文山)의 충성이며 부인은 남편을 따라 순절하였으니 홍실(洪室)의 가풍일세 해는 지고 달은 떠오르는데, 봉황은 하늘에 날고 부부가 서로 충열을 이해하니 이것이 우리 정신의 빛이네 13:26 청산구에서 단동으로 출발. 17:36 멀리 압록강과 그너머에 불꺼진 신의주가 보였다. 가이드가 손짓을 하며 저곳이 바로 위화도(이성계가 회군한 곳)라고 하니 압록강에 온 것이 실감난다. 중국 요녕성 동남부에 위치한 단동시는 북쪽으로는 백두산맥과 인접해 있고, 남쪽은 중국의 남해와 잇닿아 있으며 동쪽은 압록강과 북한을 마주 향하고 있는 변경도시, 중국과 북한의 교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단동의 “조선관”이라는 곳에 도착, 조선족 처녀들의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2층방으로 안내되어 북한 순대, 장어구이, 오징어 파전, 냉면, 불고기 등 다양한 음식을 맛보았다. 저녁식사를 하고 홍원반점(泓苑飯店, 홍원호텔)로 가서 여장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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