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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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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9월의 독립운동가 - 박시창
부서 보훈팀
박시창 [1903~1986] 독립장 서훈년도: 1963년
 
1. 선정배경
국가보훈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광복군 창설일인 9월 17일을 기념하고 일본과의 전투에 앞장선 광복군 지도자 박시창선생(1903~1986)의 공적을 기리고자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1903년 11월 경기도 시흥에서 백암 박은식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본관은 밀양이다.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부친 박은식의 민족정신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하였고 1916년 서울 오성학교를 졸업한 후 부친의 지인을 따라 해삼위로 건너갔다. 그때부터 선생은 부친 박은식이 1925년 11월 타계할 때까지 그를 수행하면서 독립운동에 종사하였다.
1925년 남경 중앙대학(中央大學)을 중퇴하고 무창(武昌)의 황포군관학교 무한분교(黃浦 軍官學校武漢分校)에 입교하였다.
아울러 선생은 의열단과도 관계를 맺고 활동하였다. 이는 선생이 후일 의열단이 주축이 되었던 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에 참여하여 활동하게 되는 인연이 되었다.
그 후 선생은 1928년 남경의 군관단(軍官團) 입대를 거쳐 1929년에는 국민혁명군 경위군(警衛軍)에서 8년 동안 복무하였다.
1932년 상해사변이 일어나자 중국군으로 대일전에 참전하여 전공을 세웠으며, 1935년경 선생은 김구(金九)의 중국군관학교 입교생 모집활동에도 협력하였다. 1941년에는 김홍일과 함께 당시 중국 군사교육과 관련하여 최고의 엘리트과정이었던 중국위륭군대학(中國威隆軍大學) 특별반에 입교하여 군사학을 연마하였다.
1943년 8월에는 광복군 총사령부에 편입되어 고급참모로 활약하였으며, 민족혁명당에 가입하여 후보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1944년 10월에는 임시정부 참모부의 참모로 임명되어 동년 12월까지 재직하였다.
1945년 8월 한국광복군 상해지대장에 임명되어 이후 많은 한국 교포들이 몰려있던 상해 및 인근지역 교포들의 생명, 재산을 보호하는 한편 한적 사병들의 귀국 알선에도 진력하였다.
1946년 7월 귀국 후 선생은 국군에 입대하여 중령의 계급으로 1948년 신설 제16연대 연대장, 1949년에는 제102여단장을 역임하였다. 그후 선생은 6·25전쟁에 참전하였으며, 연대장, 사단장, 군단장 등을 거쳐 1959년 6월 육군 소장으로 예편하였다. 1976년 선생은 안춘생(安春生)에 이어 제5대 광복회 회장에 선임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2. 주요공적
ㅇ1932 상해사변시 중국군으로 대일전 참전
ㅇ1943 광복군 총사령부 간부, 민족혁명당 후보위원
ㅇ1944 임시정부 참모부 참모
ㅇ1945 광복군 상해지대장
3. 기념행사
ㅇ 9월의 독립운동가 기념사진전
- 기 간 : 2007. 9. 1∼9. 30
- 장 소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독립기념관
- 주 관 : 광복회, 독립기념관
- 내 용 : 박시창선생 공적관련 사진 전시
ㅇ 9월의 독립운동가 공훈선양 학술강연회
- 기 간 : 2007. 9. 28 (금) 14:00 ~
- 주 최 : 순국선열유족회(☎02-365-4387)
- 장 소 : 서대문 독립공원내 독립관 무궁화홀
- 내 용 : 박시창 선생의 생애와 독립운동
- 강 사 :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김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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