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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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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10월의 독립운동가 - 권득수
부서 보훈팀
 
국가보훈처는 독립운동가 권득수 의병장을 2007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성근(成根) 권득수 선생은 경기도 양주군 남면에서 절충위장(折衝衛將)을 지낸 권신영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되고, 군대가 해산되는 등 일본의 침략이 가속화 되자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좌시하지 않고 가산을 정리 하여 군자금을 마련하는 등 국권침탈에 맞서 구국헌신을 결의하고 의병운동에 투신하였다.
선생은 양평지역을 거사를 위한 적지로 판단하고 의병모집에 착수, 격문을 돌려 200명이 넘는 의병을 규합하였다.
 
양평의 용문산을 근거지로 하여 양주·이천·지평 등지에서 일본 군경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전력의 열세를 감안하고 의병부대를 재정비하면서 홍천·춘천·화천 등지까지 활동지역을 넓혔다.
병력을 보강한 선생은 중부지방에서 활동하고 있던 민긍호, 이강년 의병부대와 연합전선을 구축하려 하는 등 당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많은 의병부대와 긴밀하게 협조하여 항일전을 수행하였다.
 
1907년 8월 조인환, 신창현 등의 의병부대와 연합하여 활동을 벌이자, 한국주차군사령관 하세가와는 250명의 병력을 양평지역에 급파하였다. 이로 인해 양평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투를 벌이며 일본군에 큰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전력의 열세로 패퇴하자 일본군은 의병활동의 근거지인 용문사와 상원사를 소각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1907년 9월 2일 일본군 제13사단 52연대 9중대와 접전 중 용문사 전투에서 장렬하게 순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정부는 선생의 투철한 항일의병정신과 공훈을 기려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자료-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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