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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청소식

지(방)청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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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우리고장 현충시설 소개-손병희선생 유허지
부서 보훈과
【의암 손병희선생 유허지】 ♣ 소재지 : 충북 청원군 북이면 금암리 385-2 ♠ 건립기관 : 청원군 ♠ 건립일자 : 1960년(1990년 성역화, 2000. 3. 1 개장) ♠ 건립비 : 3,671백만원 ♠ 관리기관 : 청원군(☏ 043-251-3312) ♠ 시설규모 - 부지 38,648㎡(약 11,691평) - 생가(목조초가 정면 4칸, 측면 1칸 : 71년 보수), 의암영당, 동상(좌대 3.1m, 입상 3.3m), 유허비, 기념관(천도교기증 유물 등 100점 전시) ※충청북도 지방기념물 제30호(1979. 10. 2 지정) 천도교 3대 교주이며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대표자인 손병희 선생(1861.4.8~1922.5.19 : ’62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고자 선생의 생가지를 성역화하였다. 매년 3월 1일 청원군 청년회의소 주관으로 3.1절 기념식이 거행된다. ※ 의암 손병희선생(1861. 4. 8 ~ 1922. 5. 19)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충청북도 청원 출신이며, 천도교인이다. 1882년에 동학에 입교, 교주 최시형의 수제자로 수도하다 1903년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최시형의 뒤를 이어 3세 교주로 취임하여 교세확장 운동을 벌이는 한편, 출판사 보성사를 창설하고 보성학교와 동덕학교를 인수하여 교육사업에 공헌하였다. 1908년 박인호에게 교주 자리를 인계하고 우이동으로 은퇴, 수도에 전념하던 중 1918년 미국 윌슨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에 고무되어 1919년 1월 동지를 모아 민족의 대표자로서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고, 그 선언서를 각지에 배포하여 국민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시켜 독립만세 운동을 일으키게 하는 한편, 일본정부와 조선총독부, 파리강화회의 참가국 위원들에게 조선의 독립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1919년 3월 1일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33인 중의 대표자로서 독립선언식의 진행을 주도하여 만세삼창을 외치고, 출동한 일본경찰에 의하여 경시청총감부에 구금되었다가,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2년간 옥고를 치르다가 석방되어, 서울 상춘원에서 요양 중 병사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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